세계 자동차 산업 재편 폭풍 … 쌍용차가 살아 남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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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일까? 다음 달 초면 GM의 생존(파산보호신청)과 쌍용차의 법정관리 개시 여부가 결정이 된다. 두 회사의 규모나 파산 때 영향력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르다. 하지만 양사 모두 급속히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생존의 위기에 몰린 점은 똑같다.

아쉬운 것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두 업체 모두 한 때의 좋은 시절에 안주하느라 적절한 변화의 시기를 놓쳤다는 점이다. 자동차 산업은 모델 변경 주기가 3~4년으로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호흡이 길다. 조금 늦어도 열심히 따라가면 환경변화에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다.

1800년대 후반 시작한 자동차 산업은 그동안 소비자가 원하는 기계적 성능과 디자인에 맞춰 엄청난 속도로 진화했다. 자동차는 우리 일상생활에 접할 수 있는 물건 중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메커니즘을 갖춘 용품이다. 2000년 이후에는 증가하는 소비자의 편의장치 요구로 첨단 전자장비들을 대폭 도입해 전자화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쯤 되면 자동차에 앉아 키로 시동을 거는 게 아니라 컴퓨터처럼 버튼을 눌러 부팅(booting)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이런 변화에 맞추어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도 초기 소규모 업체들의 난립 상태에서 사멸과 인수합병(M&A)을 통해 90년대 후반에는 10여개 그룹으로 통합됐다. 현재 진행되는 글로벌 경기침체는 이러한 통합 추세를 더욱 가속화해 수년 후에는 5~6개의 선진 그룹과 중국·인도의 저가 업체들로 나누어 재편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외환위기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쳐 전열을 정비한 쌍용차는 2000년대 들어 때마침 불어 닥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열풍에 힘입어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현대·기아차가 승용차 라인업을 중심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집중하던 때라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SUV 중심의 쌍용차는 국내에서도 최강자였다. 후륜구동의 장점을 내세워 체어맨은 현대 에쿠스와 대등한 경쟁을 했다. 덕분에 쌍용차는 소규모 업체임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브랜드 및 사륜구동(4WD) 전문이라는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다. 시장에서 선택받을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장환경은 변하고 있었고 쌍용차는 새로운 소형화, 연비를 좋게 하는 경량화 추세에 맞는 변신을 하지 못했다. 새 주인이 된 중국 상하이차와 내부 잡음도 끊이질 않았다. 게다가 경쟁사에서 연비가 좋은 경쟁 모델을 계속 내놓자 소비자들은 구태여 쌍용차를 선택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앞으로 호황이 와도 지금 상태라면 쌍용차의 몫은 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쌍용차 위기의 본질이다.

최근 쌍용차가 발표한 구조조정 방안을 살펴보면 준중형이나 중형 승용차를 추가해 종합 자동차 메이커를 지향한다고 되어 있다. 이는 방향을 잘못 잡은 듯하다. 환경에 적응하는 진화가 더 몸집이 크고 복잡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 영역의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고가의 특이한 차(니치 모델)를 만들거나 다른 업체들의 변종 모델을 만들어 주는 주문자 상표부착 생산(OEM) 업체가 되는 것은 어떨까 한다.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생존 방식을 주장하는 것이 쌍용차의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환경은 자기 생태계에 있는 생물에게 미리 삶과 죽음을 정하여 지시하지 않는다. 위기에 빠진 생물에게도 마지막 한두번의 기회는 주어진다. 아무리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인원과 원가를 계속 줄여도 시장이 공감할 수 있는 생존방식을 찾아 전부를 쏟아 붓지 않으면 쌍용차의 위기는 진행형으로 남을 것이다. 과거 사라져간 수많은 자동차 업체들을 눈여겨봐야 한다.

황순하 자동차 평론가, 전 아더앤더슨컨설팅 자동차산업 파트너, 현 GE코리아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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