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총리서리 내각]김종필 총리서리 2인자 처세학…'순응' 체질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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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종필 (金鍾泌.JP) 총리서리' 의 37년 정치인생에서 '2인자' 라는 말은 그를 표현하는 다른 이름이었다.

그래서 '2인자의 철학' 이 있다고도 한다.

동시에 네번이나 '모시는 사람' 을 바꿨다.

지금 달라진 것은 '허세 2인자' 에서 '실세 2인자' 로 자리를 굳힌 점이다.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시대 18년은 말하자면 얼굴뿐인 2인자였다.

35세때 5.16으로 권력창출에 성공했지만 단 한번도 2인자다운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朴대통령의 완벽에 가까운 권력독점과 2인자 그룹의 끊임없는 견제가 그의 부상을 가로막은 요인이었다.

그러면서 "절대로 최고권력에는 도전하지 않는다" 는 2인자 철학이 몸에 배게 됐다.

초대 중앙정보부장→공화당의장 (37세)→최장 국무총리 (45세)→공화당총재 (53세) 의 화려한 경력이었다.

하지만 육사선배인 김재춘 (金在春) 2대 정보부장, 김성곤 (金成坤) 씨 등 공화당 4인방, 김형욱 (金炯旭).이후락 (李厚洛) 정보부장 같은 이들과 차례로 힘겨운 2인자 경쟁을 벌여야 했다.

특히 '박정희 신도' 를 자처한 이후락씨와 4인방.김형욱씨 등이 朴대통령의 뜻에 따라 3선개헌이나 10월유신을 밀어붙일 때 그는 철저히 소외됐었다.

朴대통령 앞에서도 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결국 그의 최종결정을 따랐다고 한다.

朴대통령은 당시 JP에게 "임자, 이번 한번만 도와 줘" "이번만 내가 하고 다음에는 임자차례야" 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최종결정에 순응하고 '다음 차례' 라는 약속에 얽매이는 2인자 체질은 90년 3당합당 이후에도 여러 번 나타났다.

김영삼 (金泳三.YS) 전대통령이 민자당 대통령후보 시절 JP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나 다음에는 당신' 이라는 언질을 주었다든지, 노태우 (盧泰愚) - 김영삼 - 김종필 3자간에 합의한 '내각제 합의각서' 를 金대통령이 뒤엎어 버렸을 때 이를 정면반박하지 않았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金총리의 측근은 JP의 또다른 정치적 특성에 대해 "자기 계보를 만들지 않는다" 는 점을 지적했다.

김대중 (金大中.DJ) 대통령과 YS가 절대권력에 저항하기 위한 생존차원에서 각기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필요했다면, JP는 절대권력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한 생존차원에서 계파를 만들어서는 안됐다는 것. JP가 DJ.YS와 가장 뚜렷한 차이를 드러내는 대목중 하나가 이런 부분이다.

JP의 오른팔로 불리는 김용환 (金龍煥) 자민련부총재가 지난 92년 YS를 돕기로 한 JP를 버리고 독자행동을 한 것도 두 사람 사이가 전통야당의 보스 - 가신관계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다.

자기지분을 갖고 민자당을 창당해 노태우대통령을 모실 때도 2인자 그룹인 YS와 JP 는 큰 차이를 드러냈다.

김영삼대표가 노태우총재와 어깨를 맞대고 걸어 가자 뒤를 따르던 김종필최고위원이 金대표를 슬그머니 끌어당기며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그림자도 밟지 않는 법이오. " 그런 YS가 대통령이 되자 JP는 극존칭을 써 가며 깍듯이 YS를 모신다.

95년 YS로부터 버림받은 JP는 만년 2인자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을 결행한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자민련을 창당했다.

그 후에는 '투쟁하는 야당정치인' 의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김대중대통령과 공동정권을 꾸려 가면서도 김종필총리서리는 지금까지 보여줬던 2인자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용상 달라진 점은 분명히 있다.

우선 자민련이라는 든든한 자기세력이 존재한다.

정권창출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명실상부한 '50% 오너' 라는 점도 과거와 크게 다르다.

따라서 얼굴뿐인 2인자가 아니라 실권을 행사하는 2인자라는 자기인식이 분명하다.

YS와의 '쓰라린 동거경험' 으로부터 배반당하지 않는 노하우도 축적돼 있을 것이다.

극존칭을 써 가며 깍듯하게 대통령을 모시는 자세는 여전하겠지만 사정변화에 따라서는 권력의 두 축이 정면충돌하는 상황도 전혀 배제할 수만은 없다.

그래서 공동정권 1인자와 2인자 사이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긴밀한 협조관계가 그만큼 더 긴요하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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