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월드컵 꼭 주최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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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002년 월드컵축구는 꼭 주최해야 하나. 꼭 3.1절의 한.일축구전 패배 때문에 하는 얘기는 아니다.

빚을 얻어 빚을 갚고 있는 때에 그렇게 큰 잔치를 벌일 수 있느냐는 것 때문이다.

너무 '돈, 돈' 하는 것 같지만, 월드컵 개최권 반납을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하는 첫번째 이유는 우리가 돈이 없기 때문이다.

하루 속히 수출과 절약으로 돈을 모아 외채를 갚아야 하고 또 그래서 정부.기업.근로자 등 온 나라가 허리띠를 죄고 있다.

그런데 축구장을 짓느라, 호텔을 짓느라 돈을 낭비할 수 있는가 싶다.

또 당장 눈앞에 1백만명의 실업자가 거리를 헤매고 있고, 월드컵을 개최할 때가 되면 실업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르는 때에 월드컵에 들뜰 수 있는가 싶기도 하다.

무슨 또 엉뚱한 소리냐고 할지 모르나 월드컵 개최권 반납을 고려해야 하는 두번째 이유는 한국이 주최권을 반납하면 일본이 단독으로 주최하게 되기 때문이다.

억지로 따 온 공동주최권을 왜 하필이면 일본에 그냥 넘겨줄 수 있느냐고 항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단독주최하게 되면 월드컵 내수 (內需) 로 일본경제가 살아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한국경제가 회생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바깥세상은 "왜 일본이 아시아경제의 회생에 나서지 않느냐" 며 일본 두들기기에 한창이다.

일본정부가 국책사업을 일으켜 내수경기를 되살리라는 것이 국제적 요청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같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을 많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월드컵 축구를 단독으로 개최하게 되면 당장 축구장 건설 등으로 일본에 월드컵 특수가 일어 한국수출에 도움이 될 것이고, 한국의 개최비용이 절감되니 '양수겸장' 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에 비하면 월드컵 축구 주최비용은 사실 '새 발의 피' 일 수 있다.

그런데도 구태여 애꿎은 월드컵 축구를 거론하는 것은 이제야말로 모든 부문이 '제 분수' 를 알아야 할 때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물론 월드컵을 유치하느라 동분서주했던 사람들의 정성은 어찌 되며, 월드컵 중계와 외국손님으로부터 벌어들일 돈을 그냥 날려버린다니 무슨 말이냐고 할 법하다.

또 아무리 나라사정이 어렵다해도 약속을 하루아침에 저버릴 수 있느냐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우리 분수에 맞게 월드컵을 치르는 것이다.

상다리 부러진 '88올림픽' 식이 아닌 'IMF' 식 알뜰잔치 말이다.

김정수〈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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