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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민주화 인정은 헌정 질서 문란 행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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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주인은 바뀌었지만 오후가 되면 자리를 비우는 의원들의 행태는 여전하다. 9일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이 열린 국회 본회장이 오후가 되자 대부분의 의원이 자리를 뜨는 바람에 텅 비어 있다. [김형수 기자]

17대 국회 첫 대정부 질문이 시작됐다. 9일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여야 의원들은 의문사진상규명위의 남파간첩 민주화 유공자 인정 등 굵직한 쟁점을 놓고 양보없는 공방을 벌였다. 답변대에 처음 선 이해찬 국무총리는 자기 소신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이 총리, 거침없는 답변=5선의 이 총리는 오랜 국회 경험 때문인지 의원들의 추궁성 질문에 자신있게 응수했다. 한나라당 의원들과 치열한 논리공방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선 철저한 방어막을 쳤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언변으로 빠져나가려 하지 말라"고 하자 "인격 모독적인 발언을 삼가 달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심 의원이 노 대통령을 '좌파 민족주의자'로 표현한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를 꺼내 보이자 이 총리는 "노 대통령과 25년 민주화 운동을 같이한 사이로 결코 좌파가 아니며 아주 균형잡힌 분"이라고 옹호했다.

이 총리는 지난 2일 신임 인사차 염창동 한나라 당사를 방문해 박근혜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 것이 진심이었는지를 묻는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의 질문에 대해 "덕담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1990년대 중반 넘어 의정활동을 하면서 국가를 넓은 시각으로 보다 보니 박 전 대통령이 경제성장의 성공적 사례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 평가하게 돼 시각이 바뀌게 됐다"고 했다.

열린우리당의 의장직무대행인 이미경 의원은 대정부 질문을 통해 여권의 난맥상과 관련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의원은 "김선일씨 피랍 살해 사건,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고위공직자의 청탁 로비 의혹 등으로 비판적인 언론들뿐 아니라 당원들에게도 심한 질책을 받고 있다"면서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치열한 이념 공방=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간첩.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를 최근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한 의문사위 결정을 놓고 이념 공방을 했다.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이 "국가 헌정 질서 문란"이라고 하자 열린우리당 이미경 의원은 "민주주의 성숙의 한 과정"이라고 맞받았다.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은 "민주화 운동 희생자들과 민주적 헌정 질서를 파괴하기 위해 남파된 간첩.빨치산 출신의 비전향 장기수의 죽음이 동일시될 수 없다"며 "간첩들의 행적이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보느냐"고 따졌다.

이 총리는 답변에서 "간첩.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들은 민주화에 기여한 인사들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 신설도 도마에 올랐다. 김기현 의원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인용해 "고비처라는 빅 브라더가 이 나라 지도층을 24시간 밀착 감시하는 사태는 결코 생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문병호 의원은 "별도의 외청으로 독립시켜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답변에서 "기소권과 수사권까지 주면 고비처 자체가 막강한 권력기관이 된다"고 해 열린우리당과 다른 시각을 보였다.

◇"김정일 답방 약속 지켜져야"=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에 대해 "답방은 기본적으로 김 위원장이 결심해야 성사된다"며 "김 위원장은 여러 차례 답방 약속을 지키겠다고 언급한 바 있어 적절한 때가 되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정부는 김 위원장의 답방 약속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장관급 회담 등을 통해 촉구해왔다"며 "김 위원장의 답방은 핵 문제 해결과 남북 교류 협력의 진전 과정 속에서 적절한 시기에 이뤄질 수 있으며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다각적으로 노력해 나가겠다"고 했다.

박소영.김정욱 기자<olive@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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