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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농산품으로 세계시장 노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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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 생산은 온도와 습도 조절이 관건이다. 논산의 세실 천적 배양 온실 내부

뉴스위크“업계에서는 거의 전설적인 천적 사업체로 통한다.” 국내의 천적 개발과 보급을 책임지는 국립농업과학원 천적·곤충연구실의 최만영 실장이 내린 (주)세실(대표 이원규)의 평가다. 세실은 천적을 활용해 해충을 없애주는 생물학적 방제 전문기업이다.

해충 제거용 천적 보유 종 세계 3위… 궁극 목표는 농산물 수출 기업으로 성장
천적 활용 친환경 방제기업 세실

최 실장이 세실을 이렇게 극찬한 이유는 압도적인 국내 시장 지배력과 천적 보유량 때문이다. 세실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70%를 웃돈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또 상업화나 양산에 성공한 천적 수량이 29종이다. 겨우 29종이라고? 그러나 이 분야의 세계적 선두기업인 네덜란드 코펠트(Koppert)와 벨기에 바이오베스트(Biobest)가 보유한 천적 종수도 각각 34종, 33종에 불과하다.

세실은 이들 기업에 이어 세계 3위의 천적 보유 업체다. “이뿐만 아니라 공격적인 경영, 풍부한 아이디어, 중장기 사업 비전 등 실로 대단한 기업”이라고 최 실장은 칭찬했다. 세실이 어떤 기업이기에 사양산업이라는 국내 농업부문에서 세계 유력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까?

여기에는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세실은 원래 목재 수입을 전문으로 해 온 세실임산이란 회사였다. 1991년 설립된 이 회사는 3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탄탄한 무역업체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맞아 환율이 치솟는 통에 수백억원의 환차손을 입으면서 자회사 2곳이 자금난에 쓰러졌다.

설상가상으로 목재를 세실에 독점 공급하던 인도네시아 정부가 세계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수출 다변화 정책을 취하면서 수입독점 지위까지 상실했다. “더 이상 목재 수입으로는 지속적인 회사 발전을 기약하기 힘들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직원들과 함께 방향전환을 모색했다”고 이원규 대표는 말했다.

대표와 직원들이 밤을 새워 가며 궁리해 낸 새 먹을거리가 농산물 수출업이다. 무역업 노하우를 살려 우리 농산물을 해외에 내다 팔자는 구상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농산물의 수출 경쟁력은 선진국에 못 미친다. 하지만 세실 임직원들은 품질이든, 경작의 규모든, 유통구조든 어디엔가 있을 구멍을 찾아 메우면 얼마든지 한국도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국내 시장 조사와 함께 농업 선진국을 찾아가 경쟁력의 원천을 따라잡은 끝에 농업 선진국에는 있지만 한국엔 없는 걸 하나 찾았다. 바로 화학농약을 대체할 천적 방제였다. 국내에서도 천적 곤충을 활용해 해충을 제거한다면 안전한 농산물이라는 신뢰를 주리란 계산이었다.

물론 몇몇 국내 업체가 앞서 천적 배양을 시도는 했지만 규모가 영세해 천적 상품화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다. “외국인들이 우리 농산물을 믿고 먹게 하자면 천적 방제 같은 친환경농법 개발이 관건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세실 측은 설명했다. 목표가 세워지자 세실은 앞만 보고 달렸다.

2001년 5월 충남 논산시 연무읍 동산리에 1만5000평 부지를 매입해 이듬해 1월 건물과 연구시설을 완공하는 등 양산체제를 갖췄다. 2003년 3월 처음으로 상업화에 성공한 천적 1호(칠레이리응애)를 시장에 내놓으면서 천적 시장에 명함을 내밀었다. 첫술에 배부를 리 없다지만 첫해 장사는 그야말로 공쳤다.

2003년 매출액이 고작 1억9200만원. 회사의 한 달 운영비도 못 건졌다. 그해 적자가 13억원이었으니 참담한 실패였다. 하지만 세실은 시장의 흐름을 읽었다. 언젠가는 친환경 농업이 국내에서도 붐을 일으킨다고 생각했고, 그 예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적중했다.

정부가 2005년부터 천적을 활용한 해충 방제 사업에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농림수산식품부는 2005년부터 2017년까지 13년 동안 딸기, 토마토 등 9개 작물 시설재배 농가에 총 3785억원을 투입한다. 현재 4%에 불과한 시설재배작물 천적 이용률을 2013년께엔 3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라고 국립농업과학원 최만영 실장이 밝혔다).

덩달아 실적도 불같이 일어났다. 2005년 41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184억원으로 4배 이상 올랐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7.3억원→73억원)은 10배나 뛰었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이 날로 늘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40%에 달하는 친환경 농업분야 고부가가치 기업의 대표주자로 우뚝 섰다.

세실이 마냥 정부의 친환경농업 육성정책에만 편승했다면 그저 그런 신흥기업에 머물렀을 지도 모른다. 세실은 황무지나 다름없던 천적 산업 기반을 개척한 공로도 평가 받는다. 이 사업에 착수할 즈음인 1999년은 국내 천적 산업과 관련한 법과 제도는 물론 업종 분류조차 없었다. 농업선진국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천적 산업화에 성공한 때가 1967년이고 보면 산업격차가 30년 이상 벌어져 있던 시절이다.

다급해진 세실은 직접 정부와 국회, 학계 등 유관 기관을 찾아다니며 관련 법령과 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처음엔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며 한쪽 귀로 흘려 듣던 공무원, 정치인들도 차츰 우리 말에 귀를 기울이더니 나중에는 앞장서 일을 도왔다”고 이 회사 양성승 기획실장은 말했다.

그래서 천적 산업에 관련된 식물방역법 개정(2002년 5월), 친환경농업육성법 개정(2003년 1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2005년 1월), 기초의약물질과 생물학적 제제 제조업으로의 분류(2007년 11월) 등 곳곳에 세실의 숨결이 녹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척박한 토양에서 뒤늦게 출발해 국내시장을 석권하고, 세계 3위의 천적 보유 업체로 성장하기까지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제조업이 그랬듯이 세실도 농업분야에서 압축성장을 도모했다. 예컨대 세실은 특정 천적을 길러내는 온실을 처음부터 2개 지었다. 한쪽에서 오염 등 돌발사고가 생겨도 다른 온실에서 천적 공급이 가능하도록 여분의 온실을 준비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관련 시설을 한꺼번에 구비하고, 시행착오도 동시에 겪어 최대한 시간을 줄였기에 압축 성장이 가능했다.

이렇게 들어간 초기 자금이 부지매입비, 시설비, 인건비 등을 포함해 100억원을 넘어섰다. 선진 기법을 배우는 데도 인색하지 않아 사업 준비단계에서부터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등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전수해 줄 기업을 찾아 세계 구석구석을 누볐다고 세실 측은 강조했다. 이제 세실은 천적 산업의 성과를 발판으로 당초의 꿈이던 우리 농산물의 해외 수출을 겨냥한다.

그 일환으로 천적을 활용하는 친환경 농가를 골라 자체 개발한 인증 프로그램인 세이프 슈어(Safe Sure)를 부여해 왔다. 인증제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1만 가구를 조직해 내고 농가당 0.5㏊인 생산기반을 2㏊까지 끌어올려 총 2만㏊에서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한다는 목표다.

㏊당 5억원의 매출을 내면 총 10조원에 이르는 농업 생산기반 구축이 가능하다고 세실은 주장했다. 외부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꿈같은 얘기다. 하지만 세실은 이미 꿈을 현실화하는 능력을 보여줬기에 더 큰 꿈을 꿀 자격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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