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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조영남씨는 한·일 여론의 희생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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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한해협 건너 국제결혼한 한국인과 일본인 부부들의 마음고생이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역사 왜곡 문제는 연례 행사려니 하고 그렁저렁 넘어갈 수 있지만 두어 달 전에 불거져 나온 독도 영유권 논쟁은 간단치 않은 가정분쟁으로까지 확대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결혼 이후 여태껏 의견 표시를 안 하다 느닷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는 일본인 남편에게 잠자리 거부를 선언하는 어느 한국인 아내의 각오는 비장하기만 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을라치면 이건 한.일 외교 당국자 간의 말싸움이 가정에서 수시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한 사람의 한국인 여성은 직장에서 퇴근한 일본인 남편에게 며칠 동안 저녁식사 마련을 거절했다. 어느 날 남편이 두 손 들면서 가정에서 독도 논쟁 종식을 요구했다. "다케시마-아니 독도, 독도는 네 거니까 아주 가져가. 이제 밥이나 줘…." 한.일 부부들은 이런 일들을 겪어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을 키워간다. 이들 부부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싫어한다.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신세대적 사고방식이 뚜렷하다.

일본 사람이 즐겨 쓰는 단어 가운데 '전향적(前向的) 검토'라는 말이 있다. 특히 한.일 교섭에서 발표되는 성명이나 기자회견에서 역사 왜곡 문제 시정 및 무슨 위원회 설치라든가 자유무역협정 추진 등에 있어서 '전향적'이라는 단어가 한약방의 감초처럼 끼어 들어간다. 이때 우리는 전향적이라는 단어를 거의 100% '적극적(positively)'으로 해석하는 반면 일본 측은 '그런 방향으로 생각해 보겠다(keep a note) '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일이 대부분이어서 어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상당한 인식의 차이가 벌어진다. 이런 언어의 문화가 두 나라 사이에 갈등 요인이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애매의 사각지대인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대일 외교문서나 정치인들의 국회 발언 가운데 '전향적'이라는 단어가 사려없이 남용되고 있는 것은 정말 가관이다. 도대체 우리나라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그 의미가 달리 수용되는 이 일본 언어를 우리는 무작정 쓰고 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일본은 중대한 외교 문제를 검토하면서 '전향적'이라는 말 뒤에 숨어버리고, 우리는 그 단어의 가면을 벗기지 못하고 있다. 한국을 잘 아는 일본 사람들이 본다면 이건 딱 가지고 놀기에 충분한 얄팍한 친일파나 지일파의 모습이기도 하다.

가수 조영남이 한.일 두 나라 간 역사나 독도 논쟁에 가볍게 뛰어들었다가 혼쭐이 난 것은 일본의 참모습에 접근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일본을 너무 작게 찌그러뜨려 놓은 반면 조영남의 언동은 일본을 너무 크게 보는 데만 익숙해 있다. 그가 국제결혼한 한.일 부부의 고뇌의 씨앗이 무엇인지 이해하려 노력했다든가, 하다못해 '전향적'이라는 단어의 쓰임새나 제대로 알았다면 지금 같은 수난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제 두 나라의 희생물로 등장하는 것 같은 현상들이 나타나 이거야말로 큰일이다 하는 느낌을 억누를 수 없다. 조영남은 한국 여론에서 매장당하고 일본 여론은 그에게 더욱 당당하라고 채근한다. 양국의 일부 여론이 가운데에 끼인 그를 너무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그를 도마에 올려놓고 서로 상대국 여론을 비판하는 재료로 활용하는 추태를 멈추지 않는다. 조영남이 버무린 반어법이나 하이 개그는 그런대로 흘려버리면 될 것이다. 서로 되받아가며 증폭시키는 것은 우리의 품격에 맞지 않는 일이다.

최철주 월간 NEXT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