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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엔딩 인터뷰] 진구 “살인 연기하다 감정이입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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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일라이트, 진구가 어쩌면 지겹도록 생각해봤을 이야기, 살인에 대한 이야기다. 사전에 질문지 건넸을때 기획사 측에선 이런 대화는 빼자고 요청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각인된 캐릭터 이야기를 뺀다고 뭐가 달라질까?)

건달, 범죄자 연기를 많이 했다. 이 캐릭터 때문에 손해보진 않나.
“이득도 있다. 사람들이 실제로 내가 센 사람인 줄 안다. 술자리에서 시비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배역을 따지 못할 때도 있지 않나.
“손해라면 그게 손해다. 나도 부드러운 멜로나 코미디에 도전하고 싶다. 그런데 ‘진구? 걔는 안 돼’하고 거른다. 술 한 잔 같이 하신 분은 써 주시는데. 어쨌든 극복해야지.

‘트럭’에서 연쇄살인범 역을 맡았다. 간접적으로 살인마의 감정, 그들의 세계를 엿본 거다. 그 뒤 강호순 사건이 일어났는데 신경쓰이진 않나.
“강호순 사건은 기사도 읽지 않았다. 대신 유영철은 많이 연구했다. ‘트럭’ 출연할 때 공부를 해야했기 때문이다. 유영철의 옥중 편지와 그림을 실은 ‘살인중독’이라는 책도 구해 읽었다. 몰입해 읽다보니 감정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이해해선 안 될 사람이고 용서해선 안 될 사람이다. 하지만 자꾸 이해가 되고 용서하고 싶어지더라. 아예 잊어버리고 싶다.”

살인마 연구는 어떻게 했나.
“‘비열한 거리’ 할 땐 실제 깡패들과 자주 어울렸다. 담배를 필 때 손 모양은 어떤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눈빛을 하나, 어떤 말투를 쓰나 유심히 살펴봤다. 하지만 ‘트럭’에선 어려웠다. 직접 살인을 할 수도 없고, 피해자를 만날 수도 없지 않나. 그래서 책과 관련 영화,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다. 당시 사건 담당했던 검사와 판사도 만났다.”

연쇄살인을 다룬 한국 영화와 외국 영화의 차이가 있나.
“있다. 뭐랄까, 한국 쪽이 더 정이 있달까. 아, 물론 영화 얘기다. 외국 영화나 다큐에선 말그대로 이유가 없는 살인을 많이 봤다. 정말 싸이코패스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민족성이나 사회의 차이 때문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일본에서 절단 살인이 많다. 범인이 소심해서 그렇다. 피해자가 혹시 뒤쫓아와 덮칠까봐 절단을 하는 거다. 중·고교 때 여자 친구 사귀지 못한 범인들은 교복을 입혀놓고 강간 살인을 한다. ‘그래 내 첫사랑은 너같은 애였어’라고 상상하면서. 헛생각이긴 한데 연기 준비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에피소드도 있을 법 한데.
“딱히 없었다. 판검사들이 한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연쇄살인범들은 살인 쪽으로 천재라더라. 난 게임하거나 술자리에서 대화 나눌 때가 즐겁다. 그 사람들은 사람을 죽일 때 가장 즐거워한다고 한다. 그 사람한테는 개미나 이상훈이나 다 똑같은 존재다. 자기가 신이 된 것처럼 손가락을 눌러 죽일 수 있는 존재.”

연기를 할 땐 ‘상대를 정말 죽이고 싶다’고 할 정도로 감정을 꺼내야 하지 않나. 감정 조절은 어떻게 하나.
“난 50대50으로 뒀다. 연기가 끝나면 그 감정에서 바로 빠져 나오고, 시작하면 다시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트럭’의 김영호에 얽매이진 않았다.

어떤 배우는 한 배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선 안 된다. 이상훈도 야구 선수였다가 음악을 했고, 지금은 사업하는 거 아니냐. 배우는 왕도, 권력자도 아니다. 자기가 한 배역에 빠져 힘들면 주위 사람들까지 힘들어진다. 빠져나올 땐 빠져 나와야 한다. 배우라면 그런 자신이 있어야 한다. 내가 김영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면 살인자가 돼야 하는 건가?”

그래도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
“외국 영화를 보면서 메모를 했다. 앤서니 홉킨스는 이럴 때 이렇게 웃는다, ‘한니발 라이징’의 젊은 배우는 어떻게 감정 표현을 한다. 그리고 대본에 ‘이 신은 어느 영화의 누구를 참고’ 라고 적었다. 자꾸 감정 이입이 되니 ‘이러다 큰일 나겠다’ 생각도 든 게 사실이다.

그래서 촬영 끝난 뒤 휴대전화 꺼놓고 혼자 방에 처박혀 있었다. 처음엔 1주일 잡았는데 2주 걸렸다. 골방에서 나오니 햇볕이 참 좋았고 지나가는 동물 한 마리가 반갑더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때 코미디 영화 섭외가 들어왔더라면 참 잘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도 물어 보자. 마무리 투수는 실패한 경험에서 쉽게 빠져 나올 수 있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충격이 꽤 오래 갔다. 야구도 드라마라지만 우리 드라마에는 각본이 없다. 실제 상황이니. 촬영장에선 관객들이 보지 못하는 스탭들이 있다. 그래서 배우는 야구 선수보다 한 순간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다. 실제로는 어떤가. 가령 살인 연기를 할 때 살의를 느끼나.
“솔직히 말해서 신나기도 했다. 목을 찔러 죽이는 장면에선 빨리 피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특수효과장치에서 나오는 피다. 피가 터지고 상대 배우가 죽는 순간을 연기하면 ‘아, 내가 연기를 잘 했구나’라고 만족감이 든다.

그런데 스크린에서 보이는 연기에는 감독의 역할도 크다. 얼굴 표정은 감독이 잡아준다. ‘이번에는 악랄하게 해 볼까?’, ‘이번엔 웃으면서 할까’ 지시를 준다. 나중에 모니터할 때 스스로도 ‘내게 이런 면이 있구나’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잡히는 신에선 죄책감을 느꼈나?
“아니다. 내 배역이 죄책감을 느끼면 안되는 인물이었다.”

‘비열한 거리’와 ‘트럭’은 진구에게 어떤 영화인가.
“‘비열한 거리’는 이렇게 인터뷰까지 하게 해 준 작품. 그리고 ‘트럭’은 날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 작품. 주인공은 ‘기담’에서도 했다.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아직도 ‘기담’ 팬들은 매년 상영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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