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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르는 원화가치·유가 … 한국 경제 보호막 걷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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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 펼쳐졌던 ‘신3저(저원화가치·저유가·저금리)’ 효과가 사라지고 있다. 달러 환산 원화가치는 두 달 새 15.9% 올랐고,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3개월 전보다 44.9% 뛰었다. 올 상반기 우리 경제를 둘러쌌던 환율·유가 보호막이 걷힘에 따라 이제 우리 경제는 맨 몸으로 세계적 불황과 맞서야 할 처지가 됐다.

◆‘신3저’의 소멸=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신3저’를 만났다. 국제적인 달러 품귀 현상으로 원화가치가 급락하고, 세기적 불황 속에 국제유가는 가라앉았다. 통화당국이 작심하고 돈을 풀면서 금리도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출의존도가 높고 원유 수입 규모가 큰 데다 차입이 많은 한국 경제로선 불황이라는 것만 빼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구도였다.

환율 효과는 컸다. 원화가치가 달러당 1400원대를 유지하면서 자동차와 전자 업종은 해외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원화로 환산한 수출액은 4월에 10.2% 늘어 상승세를 3개월 연속 이어갔다. 지난해 여름 배럴당 150달러 안팎까지 올랐던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대로 안정되면서 운송·유통업체도 부담을 줄였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6.1%로 추락한 1분기에 한국 경제가 0.1% 성장하며 마이너스 터널에서 벗어난 것은 신3저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연세대 성태윤(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경기 지표가 당초 우려보다 악화되지 않은 것은 환율과 유가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달 들어 상황이 바뀌고 있다. 3월 2일 달러당 1570원까지 갔던 원화가치는 14일 1267.2원으로 올랐다. 2월 19일 배럴당 40.1달러에 거래됐던 두바이유는 13일 58.09달러로 치솟았다. 다만 아직은 금리를 올릴 때가 아니라는 국내외 통화당국의 판단에 따라 ‘신3저’ 가운데 저금리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불황 극복 전략 재수립해야=사실 ‘신3저’는 구조적으로 오래가기 어려웠다. 원화가치만 해도 수출이 늘어 달러가 유입되면 올라가게 돼 있다. 올 경상흑자가 20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의 통화가치가 계속 낮게 유지될 수는 없다. 문제는 속도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솔직히 하반기에 벌어졌으면 했던 일(원화가치 상승)인데 너무 빨리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도 시중에 넘쳐나는 유동성과 세계 각국의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승세를 탈 준비가 돼 있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유가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락세가 마무리되고 상승세로 전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원화가치와 유가 방향이 바뀌는 것은 한국 경제에 적신호다. 상반기에 우리 경제의 방어막이었던 원화가치와 유가가 이젠 기업들을 옥죄고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수출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채산성이 악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준비태세는 미흡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 기업 부문의 GDP 대비 차입금 비율은 영국과 유사한 110%를 넘어 일본(100% 안팎), 미국(80% 미만)보다 높다. 반면 기업과 금융 부문의 구조조정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재정부 고위관계자는 “우리처럼 보증기관을 통해 중소기업이 쓰러지지 않게 지원해준 곳은 찾기 힘들다”며 “그러다 보니 경쟁국에 비해 구조조정이 뒤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거품을 제거하고 내실을 다져야 자력으로 불황을 견딜 수 있다고 지적한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호경기를 대비해서라도 기업들은 핵심 경쟁력 위주로 사업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본부장은 “한계기업 보존정책을 마냥 지속할 수는 없다”며 “기업 간 인수합병(M&A) 등에 인센티브를 줘 시장이 구조조정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4일 ‘상반기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그동안 지체돼온 민간 부문의 부채 구조조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상렬·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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