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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역 택시타기 두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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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 3일 부산으로 주말 나들이를 다녀 온 김형준(38·천안 쌍용동)씨. 오후 11시45분 KTX를 타고 천안아산역에 도착한 김씨 부부는 택시를 기다리는 60여 명의 승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미 버스는 운행시간을 넘겼고, 간간이 택시가 한 두 대씩 역사 안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다른 승객 20여 명과 함께 불당동까지 걷기로 했다. 역사 주변은 컴컴했다. 아산 신도시 건설로 주변이 가로등도 없는 칠흑 속 공사장인데다 견본주택 간판마저 자정을 넘기면서 불빛이 꺼져 무서웠다.

현행법상 KTX 천안아산역은 아산택시 영업구역이다. 천안택시업계는 시 경계와 붙어있고 천안을 찾는 손님이 많다는 이유로 통합 영업구역 지정을 두 도시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아산택시업계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아산택시도 천안 시내 운행에 제한이 있는 건 마찬가지다. 천안택시업계는 천안고속터미널 등에서 ‘귀로영업’하는 아산택시를 몰래 카메라로 찍어 고발하는 등 수 년간 영업권 다툼을 계속해 왔다. 원래 단순 귀로영업은 불법이 아니다. 미터기를 작동하지 않을 때만 고발 대상이 된다.

이런 두 도시 택시업계 ‘밥그릇 싸움’에 지역 승객들만 골탕을 먹고 있다. 천안아산역에서 택시를 타고 천안으로 가는 승객들은 비싼 요금을 내고 아산택시를 타야 한다. 김동일씨는 “주말이면 대기 택시가 부족하다 보니 장거리 손님만 골라 태우는 배짱영업도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고 말했다.

손님을 역에 내려주고 빈 차로 돌아가는 천안택시를 잡아타면 욕을 하거나 행패를 부리는 아산 택시 기사도 있다. 천안을 처음 찾는 외지 승객들은 천안 지리를 잘 모르는 아산택시 기사를 만나 낭패를 보는 일도 허다하다. 출장차 천안에 온 고모(46·서울 잠실동)씨는 “천안의 거리 명도 모르고 대형 병원도 모르는 아산 택시기사가 어떻게 내비게이션 없이 배짱 영업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택시들 때문에 천안·아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나쁜 인상을 줄까 걱정된다”(이명준씨·천안 다가동)는 말이 나올만도 한다.

KTX 천안아산역의 택시승강장에 대기 중인 아산택시들(右). 조영회 기자

언제까지 죄 없는 소비자들만 피해를 당해야 할까. 한때 아산택시업계는 영업권을 풀려면 천안·아산 전 지역을 공동영업권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아산시 인구가 급증하면서 이제는 영업권 통합에 대한 의견도 제각각이다.

천안과 아산의 택시요금이 다르고 사납금(社納金)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영업권을 당장 통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아산에 비해 대형화돼 있는 천안택시업계에 잡아 먹히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자치단체인 천안시와 아산시는 서로 눈치만 보고 있고 충남도는 “두 도시가 합의해 결정할 문제”라며 뒷전이다.

‘민감한 문제’라며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택시업계 관계자는 “해마다 택시영업권 통합 얘기가 나오지만 말 뿐”이라며 “통합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만큼 전면통합 이전에 협의체를 구성해 요금이나 사납금 통합 같은 단계별 노력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충북의 청주시와 청원군은 2002년 택시영업권이 통합됐다.

장찬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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