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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팔레스타인 주권국가 수립 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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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05년 즉위 후 처음으로 13일 팔레스타인을 공식 방문해 팔레스타인 주권국가 수립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베네딕토 16세는 이날 예수 탄생지로 알려진 요르단강 서안의 베들레헴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교황청은 팔레스타인인이 선조의 땅에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국경을 가진 주권국가를 세울 권리가 있음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알고 있고, 내 마음은 집 없는 모든 가족과 함께 있다”며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로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오른쪽에서 둘째)가 13일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의 예수 탄생지 베들레헴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베들레헴 AP=연합뉴스]


예루살렘을 출발한 교황은 검은색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를 타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쳐놓은 높이 8m, 길이 700㎞의 ‘분리의 벽’을 지나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전 세계 11억 가톨릭 교도의 수장인 교황이 무슬림(이슬람 교도)이 대부분인 팔레스타인 지역에 들어설 때 보안요원 수백 명이 도로에 도열해 삼엄한 경호를 펼쳤다.

교황은 예수탄생교회 인근의 구유광장에서 야외 미사를 집전했다. 미사에는 가자지구에서 온 팔레스타인인 100명이 함께 참석했다. 교황은 “나의 기도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정책이) 조속히 해제되길 바라는 것”이라며 “나의 마음은 전쟁으로 찢긴 가자지구에서 온 순례자들에게 다가가 있다”고 말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이어 4600명의 난민이 살고 있는 베들레헴 외곽의 난민촌인 아이다 캠프를 방문했다.

◆화해를 위한 여행=요르단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으로 이어지는 베네딕토 16세의 중동 지역 성지 순례는 가톨릭과 유대교·이슬람교의 화해와 화합을 위한 여행이다. 베네딕토 16세는 그동안 이슬람·유대교와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왔다. 특히 2006년 9월 고국인 독일에서 집전한 미사에선 14세기 비잔틴 황제의 말(“마호메트의 일부 가르침은 악마적이고 비인간적”)을 인용해 전 세계 무슬림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올 1월에는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발언을 한 영국의 주교에 대한 파문을 철회해 유대교와의 관계도 냉랭해졌다.

BBC방송은 “교황은 (이번 순방에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 간의 종교적 갈등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라는 정치적 문제, 그리고 홀로코스트와 같은 민감한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교황의 전체 임기 중 가장 중요한 한 주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황은 중동 순방 중 화해의 메시지를 기회 있을 때마다 전했다. 그는 요르단에 도착한 8일 “이번 방문은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깊은 경의를 표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튿날 요르단의 후세인 모스크에서는 “오해로 얼룩진 역사라는 무거운 짐을 진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이제 신을 충실히 섬기는 신앙인으로 상대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찾은 12일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으로선 처음으로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인 동예루살렘의 바위돔 사원을 방문했다. 이어 유대교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로 여기는 성전산의 서벽(통곡의 벽)을 방문해, 성벽 틈새에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하느님이 이곳 성지와 중동, 전 인류에 평화를 주시기를 간구한다”는 자필 기도문을 꽂아두기도 했다. 11일에는 예루살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방문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유대인 600만 명의 넋을 위로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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