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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더블베이스 이 청년 ‘DG 노란 딱지’ 붙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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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80㎝ 훤칠한 키에 긴 팔, 유연한 손가락. 현악기 중 가장 낮은 소리를 내 ‘들러리 악기’로도 불리는 더블 베이스를 ‘악기의 왕’으로 올려놓을 수 있는 성민제군의 자산 중 하나가 바로 신체 조건이다. [DG/유니버설 뮤직 제공]

 비올라 연주자 리처드 용재 오닐(31)이 “어린 시절부터 존경심을 가지고 들었던 음반들의 ‘노란 딱지’를 달게 돼 영광이다”라고 말한 것은 2007년 10월이었다. 여기서 ‘노란 딱지’란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DG)’의 노란색 로고를 가리킨다. 연주자 선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DG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마르타 아르헤리치, 안네 조피 무터 등 ‘세계 일류’ 음악인을 골라 앨범을 만들어왔다. DG에서 선택한 한국인 연주자는 김영욱·정경화(바이올린), 정명훈(지휘), 조수미(성악)에 이어 오닐이 다섯 번째였다.

오닐에 이어 일년반 만에 한국 연주자가 ‘노란 딱지’를 달았다. 19세 더블 베이스 연주자 성민제군이다. 이달 초 발매된 앨범 ‘더블 B의 비행’(Flight of the Double B)에 그는 림스키 코르사코프 ‘왕벌의 비행’, 비제 ‘카르멘 환상곡’ 등을 넣었다. 어른 키를 넘는 우람한 악기로 연주하기에는 꽤 빠르고 날렵한 곡이다. 하지만 성민제군은 “‘더블베이스스럽지’ 않은 앨범이 나와 만족스럽다”고 한다. 무슨 뜻일까.

◆남다른 생각=통념을 깨는 말은 계속됐다. 앞으로 연주하고 싶은 곡을 묻자 “바흐 무반주 모음곡, 하이든 협주곡, 차이콥스키 로코코 변주곡”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모두 첼로로 연주하는 작품이다.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도 첼리스트 요요마로 그가 연주한 모든 앨범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더블 베이스는 오케스트라에서 다른 악기들을 받쳐주는 역할만 한다는 인식이 싫었다”는 것이 그의 변이다. 그래서 “더블 베이스로도 이런 곡을 하느냐, 이런 소리를 낼 수 있느냐”는 반문이 나올 만한 곡을 주로 연주해 왔다. 편곡자와의 작업이 연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을 정도다.

그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초등학교 4학년 때 두꺼운 백과사전과 두툼한 방석 더미를 딛고 서서야 잡을 수 있었던 더블 베이스는 그에게 늘 과제를 던져주는 악기였다. “너무 크고 무거운 악기에 질려 배우기 시작한 이듬해에 그만두려고 한 적이 있었다”는 그는 콩쿠르, 연주회가 닥칠 때마다 스스로도 놀란 승부욕으로 임하곤 했다고 털어놨다. 그 덕에 더블 베이스 세계 3대 콩쿠르 중 ‘스페르거’ ‘쿠세비츠키’에서 16세와 17세에 차례로 우승하고 ‘뮌헨 콩쿠르’만 남겨놓고 있다.

◆승부욕을 부르는 악기= 성군은 “우리 가족 넷 중 세 명이 할 정도로 좋은 악기를 사람들이 많이 모르고 있어 도전 의식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 성영석(49·서울시향 단원)씨와 여동생 성미경(16) 모두 더블 베이스를 연주하는 ‘베이스 가족’에서 태어났다. 이제 그가 목표로 내건 승부수는 “더블 베이스가 피아노와 바이올린처럼 독주 악기로 우뚝 서는 것”이다. 첫 녹음인 이번 앨범에서 그가 180㎝짜리 악기를 훨훨 날아다니게 만든 것도 이같은 뚝심 덕분이다.

“선화예중에 입학해 보니 전 학년을 통틀어 더블 베이스 전공 학생은 혼자였다”는 쓸쓸한 기억도 있다.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으려 한다”는 욕심이 오기처럼 그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했다. 15일과 18일에는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에서 다른 악기들과 함께 무대에 선다. 독주는 다음달 19일 오후 8시. ‘그윽하고 깊은 소리’라는 장점만 남기고 날쌘 악기로 변신한 ‘성민제 표 더블 베이스’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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