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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혼자 찾아간 골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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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이 길게 늘어지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넘어와서 스웨덴 제3의 도시 말뫼 근처를 배회하며 고민이 깊어졋다. 스톡홀름까지는 650Km, 웁살라까지 750Km, 안 가자니 아쉽고, 가보자니 너무 멀었다. 간다 해도 나라 모양새 상 갔던 길을 그대로 돌아 나와야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무려 1300Km 정도를 달려야 했다.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리고 땅끝 마을 같은 말뫼에서 좀 더 편하게 쉬기로 했다.

말뫼(스웨덴어: Malmö)는 스웨덴 서남쪽 끝,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해안 도시다. 때문에 예로부터 덴마크와 스웨덴의 파워게임 승패에 따라 소속이 바뀌다가 1685년 스웨덴으로 넘어가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세기 중반 이후 철도가 개통되면서 스웨덴 남부와 각지를 연결하는 중심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큰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늘어났고 덴마크 및 유럽 대륙 방면의 연락선이 취항하는 스웨덴의 문호가 되었다. 20세기 후반, 조선소가 폐쇄되는 등 다소 침체되기도 하였으나, 2000년 코펜하겐과 연결되는 외레순 교가 개통되는 등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현재 스톡홀름과 예테보리 다음가는 스웨덴 제3의 도시다.

난생 처음 혼자 골프장으로 향했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1인 플레이의 묘미를 즐겨보기 위해서였다. 골프라는 것이 모름지기 카트에 4명 꽉 채워 엉덩이 낑겨 앉아야만 출발할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해외 골프장에서 심심치 않게 만나는 1인 플레이어들이 처음엔 생경하고 가엽게 느껴졌다. 도대체 인생을 어떻게 살았기에 친구도 없이 홀로 골프를 친단 말인가?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것도 싫어하는데 4시간이 넘는 골프를 혼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자신과의 싸움, 자연과의 대화라는 골프! 그 참 맛은 홀로 자연에, 골프에 집중할 수 있을 때에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점점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동안 호시탐탐 1인 플레이 기회를 엿보았고 결국 동반자를 떨쳐내고 기회를 득했다.

장소는 말뫼 시내에서 15분 가량 떨어진 Malmö Burlöv Golfklubb.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30분 후에 플레이가 가능했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물을 한 병 구입하여 1 번 홀로 갔다. 별로 붐비지 않았고 날씨도 좋아 출발이 상쾌했다. 도심에 위치한 파크랜드 스타일의 골프장. 골프장 한가운데로 고압선이 지나가고 도심 건물들이 에워싸고 있긴 했지만 코스는 곳곳에 도전적인 요소들을 품고 있었다.

나름대로 나와 자연에 집중하고자 노력하며 3번 홀을 돌아 4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가는데 앞 팀의 한 흑인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3인 플레이를 하던 팀이라 처음에는 나를 패스시키려는 제스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조인을 제의하는 것이다. ‘난 이 골프장의 회원인데, 매일 플레이를 한다, 혼자 플레이를 하다 심심하여 좀 전에 스웨덴 노부부 팀과 조인을 했고, 이제 너까지 조인하면 4명이 꽉 찬다. 오랜만에 4인 플레이를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뭉치는 게 어떠냐….’ 자신들의 세컷 샷을 멈추고 뒷 팀의 나를 기다려 제안을 해온 터였다. ‘난 이 골프장이 처음인데 한국에선 매일 4인 플레이만 했다. 혼자 플레이를 하면 어떤 기분인지 너무 궁금해서 1인 플레이 중이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이런 기회를 잡기 어려우니 그냥 혼자 가겠다.’ 이럴 수는 없지 않는가? 1인 플레이의 묘미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다국적군의 재미를 찾아 합류했다.

그러고 보니 유럽 골프장에서 흑인을 만난 것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후드티에 청바지, 심지어 운동화 차림의 골프 복장… 다른 골프장에선 코스 출입도 불가능한 차림이 아니던가. 하지만 골프 실력만큼은 확실한 클럽 멤버였고 낯선 게스트에게도 장벽을 두지 않고 재미있는 라운드를 이끄는 매너를 소유하고 있었다. 자신의 스웨덴식 이름을 가르쳐주었으나 내 발음이 따라오지 못하자 Joe라는 영어 이름을 자처했다. 나이지리아 출신이라고 했고, 오래 전에 스웨덴으로 이민을 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이가 30대인 줄 알았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클럽 회원이 된 것이 30년쯤 되었다고 하니 족히 50대를 넘어선 연령대. 다른 인종, 특히 흑인들의 나이를 가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스웨덴 노부부 역시 가족 얘기와 골프 얘기를 버무려 즐거운 라운드에 동참했다.

다국적군의 골프가 무르익어갈 무렵 18홀이 마무리 되었고, 그제서야 코스 어딘가에서 피칭을 잃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Joe 아저씨가 17홀로 뛰어가보려는 것을 이미 그 전에 잃어버린 것 같아 멈춰 세웠다. 자기가 골프장 스탭에게 의뢰해서 찾아줄테니 5시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약속 시간에 늦어 눈이 빠지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 외기러기 한 마리를 구조해야 했기에 피칭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Joe 아저씨의 착한 눈망울 덕에 피칭 분실로 인한 우울한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기대했던 1인 라운드 원맨쇼는 무산되었지만, 재미있는 라운드였다. Old Black Joe 아저씨 덕에 코스는 기억에 없고 사람만 기억에 남긴 특별한 골프였다.

이다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