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이 길게 늘어지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넘어와서 스웨덴 제3의 도시 말뫼 근처를 배회하며 고민이 깊어졋다. 스톡홀름까지는 650Km, 웁살라까지 750Km, 안 가자니 아쉽고, 가보자니 너무 멀었다. 간다 해도 나라 모양새 상 갔던 길을 그대로 돌아 나와야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무려 1300Km 정도를 달려야 했다.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리고 땅끝 마을 같은 말뫼에서 좀 더 편하게 쉬기로 했다.
난생 처음 혼자 골프장으로 향했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1인 플레이의 묘미를 즐겨보기 위해서였다. 골프라는 것이 모름지기 카트에 4명 꽉 채워 엉덩이 낑겨 앉아야만 출발할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해외 골프장에서 심심치 않게 만나는 1인 플레이어들이 처음엔 생경하고 가엽게 느껴졌다. 도대체 인생을 어떻게 살았기에 친구도 없이 홀로 골프를 친단 말인가?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것도 싫어하는데 4시간이 넘는 골프를 혼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자신과의 싸움, 자연과의 대화라는 골프! 그 참 맛은 홀로 자연에, 골프에 집중할 수 있을 때에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점점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동안 호시탐탐 1인 플레이 기회를 엿보았고 결국 동반자를 떨쳐내고 기회를 득했다.
나름대로 나와 자연에 집중하고자 노력하며 3번 홀을 돌아 4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가는데 앞 팀의 한 흑인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3인 플레이를 하던 팀이라 처음에는 나를 패스시키려는 제스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조인을 제의하는 것이다. ‘난 이 골프장의 회원인데, 매일 플레이를 한다, 혼자 플레이를 하다 심심하여 좀 전에 스웨덴 노부부 팀과 조인을 했고, 이제 너까지 조인하면 4명이 꽉 찬다. 오랜만에 4인 플레이를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뭉치는 게 어떠냐….’ 자신들의 세컷 샷을 멈추고 뒷 팀의 나를 기다려 제안을 해온 터였다. ‘난 이 골프장이 처음인데 한국에선 매일 4인 플레이만 했다. 혼자 플레이를 하면 어떤 기분인지 너무 궁금해서 1인 플레이 중이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이런 기회를 잡기 어려우니 그냥 혼자 가겠다.’ 이럴 수는 없지 않는가? 1인 플레이의 묘미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다국적군의 재미를 찾아 합류했다.
다국적군의 골프가 무르익어갈 무렵 18홀이 마무리 되었고, 그제서야 코스 어딘가에서 피칭을 잃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Joe 아저씨가 17홀로 뛰어가보려는 것을 이미 그 전에 잃어버린 것 같아 멈춰 세웠다. 자기가 골프장 스탭에게 의뢰해서 찾아줄테니 5시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약속 시간에 늦어 눈이 빠지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 외기러기 한 마리를 구조해야 했기에 피칭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Joe 아저씨의 착한 눈망울 덕에 피칭 분실로 인한 우울한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기대했던 1인 라운드 원맨쇼는 무산되었지만, 재미있는 라운드였다. Old Black Joe 아저씨 덕에 코스는 기억에 없고 사람만 기억에 남긴 특별한 골프였다.
이다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