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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커버스토리] 수중 재활치료 … 물, 물로 보지 마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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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병으로 1급 장애를 앓고 있는 김보슬(가명·11)양. 제대로 앉지 못해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에 앉으려다 넘어져 위험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김양은 수중치료를 받으면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물속에서 보조도구나 휠체어 없이 서거나 걸을 수 있게 되자 비장애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는 등 삶의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2년이 지난 지금 김양은 학교수업을 받으면서 교우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수중재활 운동(아쿠아틱 운동) 치료가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물의 특성을 이용한 탁월한 운동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데다 즐겁고, 안전하다는 장점 때문이다.

자폐아에겐 운동으로 자신감을, 요통환자에겐 빠른 회복을 …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고쳐주는 물속 치료법이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 제대로 된 아쿠아틱 프로그램이 도입된 것은 1997년 무렵. 이즈음 물리치료사들 중심의 대한수중물리치료학회가 만들어지고 삼성서울병원·관악장애인복지관 등에 시설이 생기면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전문 프로그램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수중재활치료가 확산된 것은 2005년께부터다. 재활치료의 효능을 인정한 대학병원·장애인복지관에서 적극적으로 시설을 갖췄다. 현재 치료사와 환자가 함께 들어가는 풀 형태의 수중재활 시설을 갖춘 곳은 대학병원급으로 분당서울대병원·건국대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일산백병원·아주대병원과 산재의료원 산하 인천중앙병원·청심국제병원 등 10여 곳. 여기에 서울장애인복지관 등 복지관 10여 곳에서 아쿠아틱 시설과 전문 인력을 갖추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2시 인천중앙병원 수중운동재활관(아쿠아클리닉). 수영장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수중 운동 풀에서 7명의 요통환자들이 서선옥 수중물리치료사의 구령에 따라 그룹운동을 하고 있다. 척추디스크 수술을 받은 환자도 있지만 단순 요통 일반 환자도 참가했다. 요통 프로그램은 척추근력 강화와 함께 관절각도 증진, 지구력·심폐기능 개선 등 다양한 효과를 겨냥하고 있다. 허리가 아프면 허리를 젖히거나 구부리기 힘들어 근육이 약해지고, 그 결과 다시 척추가 약해지는 악순환을 밟는다. 수중치료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면서 운동부족에 의한 심폐기능 증진의 부수적인 효과를 준다.

서 치료사는 “지난달 27일 일반 요통환자를 대상으로 수중 운동을 시행하고 만족도를 조사했더니 95%의 환자가 ‘매우 만족’으로 응답했다”고 말했다.

이곳 아쿠아클리닉 수중치료 풀에선 중증환자를 위한 1대1 치료도 진행되고 있다. 휠체어를 탄 채로 물속으로 들어가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고, 손상된 근신경 치료를 받는다.

수중 치료의 역사는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물의 특성인 부력·수압·점도·온도를 이용해 과학적인 수중재활 치료를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부터다. 치료 대상자는 광범위하다. 뇌·척수 손상에 의한 마비 환자, 각종 관절 및 요통 환자, 비만 개선이나 산모에게도 적용된다. 심폐기능의 재활, 림프 부종 등 순환계 질환, 스포츠 또는 산업재해 손상, 정신지체나 자폐증 등 적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글=고종관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서선옥 수중물리치료사(左)가 7일 한국 산재의료원 인천중앙병원에서 수중재활 운동을 가르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재활의학과 강성훈 물리치료사는 “보행이 아예 불가능했던 뇌성마비 어린이가 수중치료를 받고 11년 만에 스스로 걷는 모습을 봤을 때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누군가의 보조 없이 자립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독립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자존감이 향상되는 등 심리적 재활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국내에 수중재활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 수요는 크게 늘고 있지만 시설이 한정돼 장애인이 수중재활 치료를 받기 위해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대학병원 역시 전체의 10% 정도밖에 설치돼 있지 않다. 고대의대병원이나 서울아산병원 등 규모가 큰 대학병원조차 없는 곳이 많다. 배경은 수중재활 치료가 병원 수입에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수가는 1회 30분으로 한정돼 1만원이다. 게다가 보험수가 인정범위도 뇌성마비나 뇌졸중 등 중추신경계에 한정돼 있다. 요통이나 인공관절 수술 후 재활엔 지원이 되질 않는다.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백남종 교수는 “수중치료사가 하루에 치료할 수 있는 환자 수가 제한된 데다 시설비와 물값·난방비 등 운영비가 많이 들어 치료를 늘릴수록 적자가 생기는 구조”라고 말했다.

전문치료사 제도가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현재 수중물리치료학회에서 물리치료사를 대상으로 수중치료 교육을 하고 있지만 정부가 자격증을 인정하지 않은 데다 마땅히 취업할 곳도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것.

강성훈 물리치료사는 “운동 치료의 경우 전문치료사들이 참여한 경우에만 보험수가를 청구할 수 있다”며 “수중 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전문치료사 자격을 제도화하고, 보험수가 현실화와 환자 적용범위를 늘려주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중 재활치료 효과와 방법은

물 차가운 일반 수영장선 근육 더 굳어질 수도

수중재활 치료의 역사는 깊다. 미국에선 남북전쟁 당시 부상자 치료를 위해 수중시설이 건립돼 치료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성서울병원 강성훈 물리치료사는 “물은 공기에 비해 밀도가 800배 정도 높다”며 “수중치료는 지상에선 경험할 수 없는 수온·부력·수압·점성의 저항 등을 활용해 다양한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수압이 폐·심장 기능 강화시켜

우선 물의 부력을 보자. 물의 높이에 따라 체중 부담이 줄어든다. 수심에 따라 물이 허벅지에 이를 때는 35%, 가슴에선 75%, 목까지 담갔을 때는 체중의 90%가 감소한다. 척추·무릎·발목 등 근골격계의 부담이 크게 줄어 지상에서 통증으로 운동이 어려운 환자도 물속에선 가능하다. 수압도 재활효과가 높다. 가슴까지 물에 잠기면 다리 정맥과 임파선이 압박을 받아 중심부 혈액량이 증가해 하지 부종 감소뿐 아니라 심박출량이 증가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인천중앙병원 재활의학과 나진경 과장은 “수압으로 횡격막이 올라가고, 가슴둘레가 줄어드는 등 폐의 용적이 줄어 숨을 쉬기 힘들다”며 “이런 점을 이용해 폐기능을 강화한다”고 말했다.

물 저항 이용 단기간에 근력 키워

심리적인 위축이나 불안·우울증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마음이 불안한 상태에서 섭씨 31∼34도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전신이 이완되면서 마음이 안정을 찾는다. 여기에 수중운동과 게임을 통해 긍정적인 사고와 사회성을 회복할 수 있다. 근육 강직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근 이완과 근력 강화 효과를 얻는다. 섭씨 34∼36도의 온도는 중추신경장애로 발생하는 몸통과 사지의 강직을 감소시킨다.

나 과장은 “물의 저항을 이용할 경우 단기간에 근력이 키워진다”며 “다리 절단 환자가 수중재활 치료를 받으면 의지를 사용하는 다리 근력이 훨씬 강해진다”고 말했다.

40도 안팎 수온 신진대사 활발하게

물의 온도도 활용한다. 물의 온도가 체온보다 약간 낮은 온도에선 뇌의 부교감신경이 자극돼 심신이 안정되고, 40도 내외의 고온욕은 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한다. 스트레스에 의한 위염이나 소화불량·두통 등 증상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환자가 수영장을 활용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 수영장의 수온은 섭씨 25∼28도 수준. 이 정도 온도에선 가뜩이나 근육 강직으로 고생하는 신경계 손상 환자의 근육이 더 경직된다. 강성훈 물리치료사는 “물은 공기에 비해 열전도율이 훨씬 크기 때문에 운동으로 열을 발생할 수 없는 장애인에겐 역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물속에 러닝머신·덤벨 갖추기도

2002년 개설한 청심국제병원 수중재활클리닉(경기도 가평)은 대학병원에 없는 다양한 치료 풀을 자랑한다. 중풍·척수손상·뇌성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전문치료사가 1:1로 치료하는 치료 풀 외에도 혼자 걸을 수 있는 워킹 풀, 당뇨·심장질환·호흡기 환자를 위한 냉온 대조욕 풀 등 7개의 풀을 갖추고 있다. 해당 질환에 맞는 풀에서 치료받을 때는 의료보험 수가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예컨대 인공관절 수술 환자라도 전문치료 기능을 갖춘 반신욕 풀에서 치료받으면 의료보험 적용 대상이 된다는 것.

2007년 10월 개장한 인천중앙병원 수중재활관은 국내에서 가장 큰 시설을 자랑한다. 지하 3층에서 지상 1층까지 3473㎡의 규모다. 일반 수영장 크기(25×12m) 5개 레인을 설치한 수중운동 풀, 3×4×1.5m의 수중치료 풀, 4×4×0.6m의 수중이완 풀을 갖추고 있다.

물속에 러닝머신·사이클·덤벨 등이 있어 근력운동이나 보행연습을 할 수 있고, 중증 환자를 위한 1:1 치료도 진행된다. 수중이완 풀은 냉·온수가, 와류 풀에선 물 지압이 가능하다. 3명의 수중치료사가 전담한다.

산재의료원 산하 병원이지만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다. 재활전문센터로 직접 찾아가 전문의에게 처방받은 뒤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체조·기구운동·놀이운동 등 그룹 참가비는 1회 2만원, 1:1 치료는 3만원이다.

글=고종관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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