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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원으로 1억 투자 효과 … 나도 ‘와타나베 부인’ 돼 볼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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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1992년 9월.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는 영국 중앙은행(BOE)과 환율 싸움을 벌였다. 고평가된 파운드화를 무차별로 팔아 치웠다. BOE가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파운드화 가치는 20% 가까이 폭락했다. 국제 외환시장에서는 BOE가 100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입고 소로스 때문에 망하게 됐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소로스는 한 달여 만에 10억 달러(약 1조2500억원)를 벌면서 유명해졌다.

#일본의 도리 마유미(42)는 평범한 아줌마다. 최종 학력은 전문대, 직장 생활 경험이라곤 결혼 전 비서로 근무한 것이 전부다. 그녀는 이혼을 계기로 여성의 경제적 자립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2004년 재혼 후 2006년에 FX 마진 거래에 눈을 떴다. 200만 엔을 한 달 만에 470만 엔으로 불렸다. 그녀의 FX 블로그는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일본에서 인기 블로그 랭킹 2위에 올랐다. 올 초 국내에도 그녀의 FX 마진 거래 비법을 소개한 책이 출판됐다.
 
모두 ‘환(換)’에 투자해서 성공을 거둔 경우다. 국내에서 환투자는 예금이나 채권·주식 투자에 비해 생소하다. 그러다 지난해 가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원화가치가 급락하고 외환 시장이 요동치면서 관심이 커졌다. 키코(KIKO·통화옵션상품) 사태로 문을 닫는 중소기업들까지 나오자 환투자 열기도 뜨거워졌다. 대표적 환투자 상품인 달러선물은 1999년 4월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이래 거래량이 연평균 69%씩 늘어났다. 올 들어 하루 평균 거래량은 상장 첫해보다 28배 증가해 4만 계약을 넘어섰다. 거래량으로 세계 16위, 아시아 시장 4위 규모다. FX 마진 거래 또한 급증 추세다. 2005년 2만 계약에 불과하던 거래량은 지난해엔 334만 계약까지 불어났다. 특히 지난해 10월 한 달 동안 거래된 것만 52만 개를 웃돈다. 환 헤지나 투자 차원에서 ‘환테크’에 대한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환율 고정해 경영 안정화
지난달 한국거래소는 달러선물 시장 활성화를 위해 거래 단위를 5만 달러에서 1만 달러로 낮추고, 상장결제월 수도 종전 6개에서 8개로 늘렸다. 단위가 작아지고 종류는 늘어난 격이라 거래가 손쉬워졌다.

달러 선물은 일견 낯설어 보이지만 거래 방식은 주가지수(코스피 200 등) 선물과 별 차이가 없다. 종목이 달러로 바뀌었을 뿐이다. 미래에 원화 대비 달러 가치가 상승할 것 같으면 달러를 사고, 하락할 것 같으면 파는 식이다. 기본예탁금 1500만원만 있으면 거래를 시작할 수 있다. 위탁 증거금은 거래 금액의 4.5%, 유지 증거금은 3%다. 예를 들어 달러 선물 1계약(1만 달러)을 사겠다면 1만 달러의 4.5%인 450달러와 3%인 300달러, 합쳐서 750달러만 있으면 된다. 750달러로 1만 달러에 투자한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달러선물은 은행·투신 등 기관 투자자가 거래 비중의 80%를 차지한다. 개인 투자 비중은 15%에 그쳐 개인들의 환테크 수단으로 그다지 각광받고 있지는 못하다.

달러선물은 되레 수출 중소기업의 환 헤지 수단으로 적합하다. NH투자선물 이진우 부장은 “환 헤지를 통해 경영 안정화를 꾀하겠다는 목적이라면 은행에 수수료를 떼 주면서 키코나 환변동 보험에 가입하는 것보다 달러선물을 이용하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달러선물을 활용한 가장 간단한 헤지 전략은 일정 기간 뒤 들어올 수출 대금만큼 달러를 현재 환율로 미리 파는 것이다. 예컨대 현재 달러 값이 달러당 1000원이고 6개월 후 10만 달러가 수출 대금으로 들어온다고 가정하자. 6개월 후 달러가 1100원이 되면 1000만원의 환차익이 생긴다. 그러나 반대로 달러가 900원이 되면 10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10만 달러어치 달러 선물을 미리 팔아 두면 6개월 후 달러 가치가 어떻게 변하건 간에 ‘1달러=1000원’에 맞춰 경영 전략을 짤 수 있다. 한국거래소 김기동 과장은 “중소기업은 신용도가 낮고 수출 건당 거래 규모가 작아 달러선물을 이용한 환 헤지에 어려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거래 단위를 1만 달러로 낮춰 중소기업들도 손쉽게 환 헤지가 가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24시간 거래 가능
개인들에게 인기 있는 환테크 수단은 FX 마진 거래다. FX(Foreign eXchange) 마진 거래는 금융회사에 맡긴 마진(증거금)의 최고 50배까지 인터넷(HTS)을 통해 외화를 사고팔 수 있는 장외 소매외환거래를 말한다. 증거금 2000달러만 있으면 거래할 수 있다. 최소 거래 단위가 10만이다. 예컨대 달러를 사고팔려면 10만 달러, 엔화를 사고판다면 10만 엔 식이다. 일본에서는 1998년 FX 마진 거래가 도입된 이래 주부들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외환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으로까지 성장, 이들을 ‘와타나베 부인’이라 부르기도 했다.

FX 마진 거래는 주식과 선물 거래를 합해 놓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일정 규모의 증거금을 예치한 뒤 주식처럼 엔-달러나 달러-유로 등을 사고판다. 달러나 엔·유로 값이 쌀 때 사서 비싸진 뒤 팔면 이익을, 반대의 경우엔 손해를 보는 식이다. 2%의 증거금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가진 돈의 50배까지 거래할 수 있다(50배 레버리지 효과). 200만원으로 1억원을 거래할 수 있는 셈이다. 주가가 내릴 것을 예측해 주식을 빌려 미리 팔아 두는 공매도처럼 FX 마진 거래도 가격이 떨어질 것 같으면 매도를 할 수 있다. 특정 통화의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만 잘 예측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전 세계 외환시장을 시간대별로 넘나들며 24시간 HTS로 거래할 수 있다. 거래 규모가 크기 때문에 특정 세력에 의해 가격이 조작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주식에 비해 종목 수도 30여 개 통화로 간단하다. 국내 선물회사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거래 수수료를 아예 받지 않는 곳도 많다(선물회사는 대신 은행이 환전 수수료를 받는 것처럼 통화를 사고팔 때 가격 차(스프레드)로 이익을 추구한다).

FX 마진 거래를 하려면 외환·KR·한맥·유진투자선물 등 선물회사에 계좌를 개설하고 HTS를 다운받으면 된다. 간혹 국내 인가를 받지 않은 해외선물중개회사(FCM)들이 한국어 사이트까지 개설해 놓고 국내 투자자들에게 계좌 개설을 권유하기도 한다. 감독당국 관계자는 그러나 “아직 뚜렷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제제를 못하고는 있지만 합법은 아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격 급변땐 속수무책
투자 금액의 50배까지 투자할 수 있는 만큼 큰돈을 벌 수도 있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방향성을 잘 예측하면 환율이 1%만 변해도 증거금의 50% 수익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환율이 반대 방향으로 1% 움직이면 증거금이 반 토막(-50%) 난다. 심지어는 증거금을 모두 날리고 추가로 돈을 더 넣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증거금이 바닥나기 전에 강제로 거래를 청산하는 ‘마진 콜’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가격이 급격히 변할 경우엔 속수무책이다.

외환선물 유상미 연구원은 “보통은 1년에 대여섯 차례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지만 지난해와 올해 초엔 외환시장이 급변하면서 증거금 이상 돈을 날리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지난해 말 1500만원 정도를 모두 날리고 1500만원을 더 집어넣게 된 고객도 봤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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