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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언어,종교의 다양성, EU 통합 뒤엔 약점 아닌 강점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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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22면

동유럽은 전 세계 어느 지역보다 험한 역사의 가시밭길을 걸어 왔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촉발시킬 만큼 민감한 지역이다. 그들 앞에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유럽연합(EU) 안에서 동유럽의 의미는 무엇일까.그 해답은 4일 EU 브뤼셀 본부청사에서 있었던 ‘유럽에서의 공산정권 멸망 20주년과 동유럽의 EU 가입 5주년’ 기념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 자리에서 EU 수석부위원장인 마고 월스트롬은 “20년 전 민주화를 부르짖던 동유럽 시민들의 항쟁이 공산정권을 무너뜨렸고 오랫동안 갈려 있던 유럽이 마침내 하나로 단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동유럽은 이제 EU의 한 부분이 됐다.

동유럽의 미래 문명 모자이크의 힘

지난 20년간 진행된 동유럽의 체제 전환은 ‘하나의 유럽’을 목표로 한 유럽 통합의 이상에 힘을 실어 주었다. EU 가입에 대한 동유럽 국가들의 청사진을 제공한 것은 1997년 12월 발표된 ‘어젠다 2000’이다. EU는 동유럽을 EU에 가입시켜 ‘유럽 공동체화’를 추구하겠다는 이상을 제시했다.

동유럽 국가로선 체제 전환 과정의 불안감을 해소하면서 정치·사회적인 안정을 추구할 수 있는 이점을 기대하고 있다. 이런 계산이 맞아떨어져 양측이 EU 통합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 것이다. 그 성공 모델은 바로 슬로베니아·체코·폴란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지난 20년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정착시키면서 경제발전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동유럽의 가장 큰 약점은 민족·종교·언어·문화의 다양성과 모자이크다. 서유럽이 지난 20년간 통합을 추진해 왔다면 동유럽은 분열의 과정을 겪어 왔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주권의 맛에 대한 향유’가 충분치 않았다. 이는 민족 간 분열을 부추겼다. 둘째는 종교·언어·관습·역사의 차이에 따라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동유럽의 ‘문화적 민족주의’ 성향이 지나치게 강했다. 동유럽 민족들은 국가를 향한 충성보다 민족 지도자를 향한 충성이 더 강한 특성을 보여 왔다.

그래서 동유럽에선 지난 20년간 정치적인 격동과 국가 간 분열이 계속됐다. 예컨대 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열,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분열을 들 수 있다. 분열 과정 속에 나타난 유고 연방의 민족 분쟁과 내전을 지켜 본 체코슬로바키아는 체코와 슬로바키아 간 분열 과정을 상호 합의 아래 추진해 ‘벨벳 혁명’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요시프 티토 시절 단일 국가를 유지하던 유고 연방은 전혀 달랐다. 종교·문화의 모자이크 지역으로 불리던 유고 연방에서는 10여 년간 피비린내 나는 분쟁과 내전이 계속됐다. 유고 연방은 현재 7개국으로 쪼개졌다. 그중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성공리에 정착시킨 슬로베니아는 동유럽에서 가장 모범적인 체제 전환 국가로 손꼽힌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5000달러가 넘고 EU·나토 가입(2004년), 유로존 가입(2007년)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반면 민족문제로 격돌한 세르비아·마케도니아는 1인당 소득이 3000~4000달러에 머물고 있다. 헝가리와 루마니아는 상호 합의를 통해 국내외 민족 문제를 덮어 두고 EU 가입에 성공했다.

영토·민족 분쟁이 상존하는 사례는 그뿐만이 아니다. 루마니아는 몰도바공화국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갈등한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역사적 소유권을 주장하고, 불가리아는 터키 민족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합의와 대화를 요구하는 EU와 유엔 등 국제 사회의 설득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동유럽의 미래는 이들 국가 스스로 내부 분열의 유혹을 얼마나 뿌리칠 수 있느냐, 그리고 국제 사회가 당사자 간 갈등 해결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달려 있는지 모른다.

과거 3년8개월간 치열한 민족 분쟁을 겪던 보스니아는 최근 유엔의 관심과 EU의 지원을 바탕으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내전 이전의 평화를 되찾고 있다. 반면 유엔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토가 일방적으로 전쟁을 종결시킨 코소보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지난해 2월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은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분쟁 지역에서 내부 합의 없이 외부의 일방적인 군사 개입으로 영구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 준다.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 때문에 최근 전달되는 동유럽 관련 뉴스는 부정적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동유럽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재탄생한 것을 사람에 비유하자면 불과 스무 살밖에 되지 않았다.

스무 살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함께 꿈과 희망이 공존하면서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시기다. EU의 정책 보고서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 서유럽은 유럽 건설을 위해 동유럽으로의 확장을 한번도 중단한 적이 없다.

앞으로도 민주·자유·인권을 모토로 하는 동유럽의 발전은 꾸준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에게 동유럽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또 하나의 유럽’이라 할 수 있다. EU 통합을 통해 동서 유럽의 격차가 줄어들면 문화의 다양성이 각광받을 지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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