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자살 막을 희망 메시지 주고 싶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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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강상중 교수가 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저서 『고민하는 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일 한국인 중 최초로 일본 도쿄대 교수가 돼 화제를 모은 강상중(59·사진) 대학원 정보학환(情報學環) 교수. 그가 지난해 일본에서 펴낸 에세이집 『고민하는 힘』은 지금까지 100만부 넘게 팔리며 또 하나의 ‘이변’을 낳았다. 출판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 인문학 에세이집이 100만부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는 것부터가 이례적이며, 그 저자가 ‘재일 교포’라는 사실은 ‘사건’에 속한다.

최근 한국어판 출간을 맞아 한국을 찾은 강 교수가 6일 기자회견에서 꺼낸 화두는 ‘자살’이었다. 책을 쓰게 된 동기가 자살이 급증하는 사회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올 3월 한달 간 자살자가 4000명을 넘었다. 1998년 자살자 숫자가 연 3만 명을 넘은 뒤로 지난 10년 간 30만 명이 자살한 셈이다. 올해는 4만 명이 넘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회에서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희망’이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고민하는 힘’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었다.”

한국의 자살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07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 당 24.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 정도의 ‘민간인 사망’이라면 한·일 양국은 ‘전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희망의 붕괴에 따른 자멸적인 ‘내전 상황’이라고나 할까.

강 교수는 “재일 한국인으로서 내 부모 세대는 극심한 가난과 사회적 차별 속에서 고난을 겪었다. 이젠 일본 사회가 전반적으로 ‘재일(동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재일 동포’가 겪었던 경제·사회적 차별을 이젠 일본의 비정규직, 특히 젊은층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한국의 ‘88만원 세대’와 유사한 점이라고 지적했다.

강교수가 보기에 이런 상황은 대단히 위험하다. 사회적으로 ‘묻지마 범죄’의 만연이 우려된다. 그는 “사회 안전망에서 격리돼 ‘1회용 노동력’ 취급을 받는 젊은이들은 범죄를 통해 폭력적 에너지를 분출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념적으로는 파시즘의 대두가 우려된다. 현재의 경제·사회적 위기는 1차 대전 이후 유럽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당시 젊은이들의 좌절된 희망을 폭력적으로 모아 낸 인물이 바로 히틀러”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연간 수만 명의 자살자가 나오게 하는 정부는 실격이다”고 강조했다. 일본 TV에 나가서는 정부 당국자들이 ‘머리를 박박 밀고 반성해야 한다’고까지 공격했다고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강 교수 책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와 일본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에 대한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100년 전 자본주의의 문제를 접한 대표적 지성들의 ‘고민’을 오늘날 다시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북유럽 국가들의 사회보장정책을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발전주의’ 국가들이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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