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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 “몇 시간씩 사색하다보면 정신 가물거릴 때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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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나는 한평생 일감에 파묻혀 살려고 한다. 이것이 나의 가장 큰 행복이고 기쁨”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숭고한 헌신의 세계’라는 글을 통해서다. 신문은 김 위원장이 간부들에게 사색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나도 일감을 놓고 몇 시간씩 정신을 집중하여 사색하노라면(하다보면) 정신이 가물거릴 때도 있다”는 말을 했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이 말을 한 시점을 밝히지 않은 채 ‘어느 해 무더운 여름날 점심시간’이라고만 했다. 발언 시점과 관련, 지난해 8월 김 위원장의 뇌졸중 발병 직전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신문은 또 김 위원장이 “어떤 사람들은 내가 무슨 일에 맞다들려도(맞닥뜨려도) 순간에 척척 풀어 제낀다고 말하는데 사실은 그렇지만 않다”고 말한 내용도 소개했다.

이 같은 북한 언론의 보도 내용은 과거와 사뭇 달라진 것이다. 북한 언론들은 과거 김 위원장을 ‘강철’에 비유하며 “인민의 행복을 위해 ‘불면불휴’(不眠不休·자지도 쉬지도 않음)하며 선군장정의 길(현지지도)을 이어간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김 위원장의 뇌졸중 발병 이후 ‘완벽한’ 이미지로 일관하던 데서 탈피, ‘나약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가미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17일에도 “사람이 쇠가 아닌 이상 몸을 돌봐야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제 몸을 돌볼 사이가 없다”며 “나라고 왜 피곤하지 않으며 피곤하면 잠이 오지 않겠는가. 나는 피곤해도 참는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을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을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뉘앙스다.

이 같은 북한 언론의 보도를 놓고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헌신성을 강조하며 주민들의 동요를 막고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것으로 분석한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은 완벽한 상황이 아니면 주민들 앞에 나서지 않는 성격”이라며 “그럼에도 병색이 짙은 모습을 공개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이 ‘장군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다 저렇게 됐다’는 마음으로 체제결속과 경제현장으로 동원하기 위한 정신적 동기 부여”라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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