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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봤습니다] 기자가 함께 한 인천 숭덕여고 진학담당 박권우 교사의 하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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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우(左)교사와 최석호기자

대학입시의 화두는 수시모집 확대와 입학사정관 전형이다. 대학들은 앞다퉈 입학사정관 전형 모집인원을 늘렸고, 모집정원의 50% 이상을 수시모집으로 뽑는다. 학생들의 잠재력을 보고 신입생을 선발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일선 고교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차별화된 수시 지원 전략 수립 여부에 따라 대입의 성패가 갈린다. 학생부 작성 방법에 따라 학생 및 해당 고교의 신뢰도가 달라진다. 진학 담당 교사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이른바 ‘3D 교사’라는 진학 담당 교사의 하루를 기자가 직접 따라가 봤다.

글=최석호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인천 숭덕여고는 지역환경이 좋지 못하다. 상당수 학생이 10평 내외의 임대아파트에 거주하고 경제사정상 사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지난해 수능 4개 영역에서 2개 영역 1등급을 받은 학생은 1%(졸업생 397명 중 4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학교 박권우(41·영어과) 입시전략부장의 차별화된 수시 지원 전략으로 11명의 학생을 SKY대(서울대·고려대·연세대) 수시모집에 합격시켰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지방캠퍼스 합격생을 제외한 수치다. 수능성적 위주인 정시선발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결과였다. 졸업생의 50% 이상이 수시모집으로 대학에 합격했다. 기자가 박 부장의 하루를 쫓아다니기로 결정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발 빠른 입시분석

지난달 8일 오전 7시30분 인천시 남동구 숭덕여고 입시전략부실. 출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박 부장이 분주히 움직인다. 박 부장은 주요 대학 입시요강이 발표될 때마다 3학년 담임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한다. 그는 “입시는 시간과의 전쟁”이라며 “입시요강이 발표된 직후에 정보를 공유해야 발 빠르게 진학지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3학년 담임교사 회의시간. “KAIST 설명회에 다녀왔습니다. 2010학년도 일반전형에서는 경시대회 성적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 학교도 해볼 만합니다.” 고3 담임교사들이 귀를 기울였다.

고려대 전형에 관한 발표가 이어졌다. 박 부장은 한숨부터 쉬었다. 수시2-1 학생부 우수자 전형에서 추천자 인원을 학교당 인문계 1명, 자연계 1명으로 제한한다는 발표안 때문이다. 박 부장은 “내신성적만으로 고려대에 들어간다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다”며 “지난해보다 비교과 반영 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학생들 실적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기록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 부장이 정리한 고려대 입시전형 계획안에는 지난해 입시와 비교된 표가 첨부돼 있었다.

한 발 앞선 학생관리

3학년 담임교사 회의를 끝낸 박 부장은 교내방송을 통해 2학년 비전반 학생들을 불렀다. 비전반은 지난해 박 부장이 입시전략부장이 되면서 만든 모임이다. 지난해 5월 당시 1, 2학년을 대상으로 성적 우수자와 비교과 활동 우수자 28명(현재 2학년 16명, 3학년 12명)을 뽑아 자신이 직접 입시지도와 내신 및 비교과 실적관리를 해주고 있다. 박 부장은 비전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1년에 두 차례씩 학부모와 함께 상담을 하고, 학생·학부모 상담 후에는 담임교사와의 면담을 통해 세부 지도 사항을 논의한다. 2학년 때부터 학생회 임원을 해온 정다혜(18·고3·비교과 우수자로 비전반 선발)양은 2학년 1학기까지 내신 2, 3등급이었지만 현재 1.6등급까지 끌어올렸다. 박 부장은 “동기 부여가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날 비전반 학생들은 박 부장에게 다음 날(4월 29일)부터 치러질 중간고사의 중요성에 대해 들었다. 안나송(17)양은 “성적이 떨어지면 부모님을 불러 환경적 요인부터 체크하시기 때문에 부담이 많이 된다. 공부에 전념하게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생존 전략은 공부

오전 11시30분 오전 수업을 마친 박 부장이 집으로 향했다. 점심식사를 하러 간다고 했다. “사실은 오늘 오후에 3학년 학생 네 명을 진학지도하기로 했어요. 우리 학교 전교 1등 아이도 있고….” 그제야 집에서 점심식사를 한 이유를 알았다. 박 부장의 개인 컴퓨터에는 학생 하나하나의 진학관리카드가 담겨 있었다. 내신성적과 모의고사 성적, 학생회·봉사활동 등 비교과 활동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진학관리 카드와 자신이 정리해 놓은 ‘수능 최저학력기준에 따른 대학유형별 정리’ 표를 보며 어떤 대학, 어떤 전형에 유리할지를 기록했다. 그는 “환자가 의사를 찾았는데, 병명이 뭔지 책을 뒤져 보면 신뢰가 가겠느냐”며 “진학면담이 있을 때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집으로 와 해당 학생에 대해 집중학습을 한다”고 털어놨다.

학습의 효과는 역시 달랐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이어진 학생 면담에서 박 부장은 거칠 것 없는 입담을 자랑했다. 전교 1등이라는 이미랑(18·서울대 의예과 희망)양에게는 “서울대 지역균형 선발을 노리고, 1학기 성적 전 과목 1등급 확보와 함께 면접에 대비해 수학·과학 심화학습을 하라”고 조언했다. 내신 평균 4등급대의 김민정(18)양에게는 “수능 2개 영역을 3등급 이내로 끌어올리고, 적성검사에 대비해 가톨릭대나 한양대 안산캠퍼스, 경기대 등을 노리라”고 말했다.

아쉬움, 그리고 남은 숙제

두 시간여의 진학 면담이 끝나고, 오전에 발표했던 고려대 입학전형에 대한 궁금증이 남은 듯 박 부장은 대학에 전화를 걸었다. 면접 진행 방식과 세부적인 학생부 반영 방법 등 물어볼 말이 많은 듯했다. 그러나 전화통화를 마친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박 부장은 “세부 모집요강이 공식 발표되기 전까지는 알려줄 게 없다고 했다”며 “진학지도를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 부장의 책상에 20여 개 대학 이름이 빼곡히 적힌 메모지가 꽂혀 있었다. 아직 입시요강이 발표되지 않은 학교들이다. 하루에 한 번씩은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요강이 나왔는지를 확인하곤 하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에 힘이 든다고 했다.

이러다 보니 박 부장은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서도 자리에 남아 있었다. 중간고사 직후 1학년 비전반 학생들을 뽑는 일과 8월 교사 연수 자료 준비를 마무리했다.

“1주일에 16시간 수업을 하고, 줄줄이 학생 면담도 해야 하는데, 어쩔 수 있겠어요? 제가 노는 시간 아끼면 우리 애들에게 좀 더 좋은 입시정보를 줄 수 있는걸요.”

박 부장은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학교 정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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