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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10대 한국병]11.과학기술의 취약성(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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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제난국을 근본적이고도 장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과학기술력을 높여 '고비용 저능률' 문제를 극복하고 이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투자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기술정책과 종합조정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맡아 집중 관리해야 하며, 연구와 고등교육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과학기술처와 교육부의 고등교육이 통합돼야 한다.

또 출연연구기관에 연구집중형 소규모 대학원 과정을 도입해 연구 결과가 기술의 수요자에게 효과적으로 이전되게 해야 한다.

아울러 적은 연구비로도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고급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대학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며 이를 위한 투자는 기여입학제를 통해 사교육비를 끌어들여 충당해야 한다.

과학기술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첫째, 과학기술정책이 국가경영의 중심축에서 결집력을 갖고 강력히 추진돼야 한다.

이를 위해 행정체제를 개혁해야 한다.

초기에는 과학기술처가 과학기술 하부구조를 구축하고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체계를 정립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이후 기술혁신이 국제경쟁의 불가결한 핵심 요인이 됨에 따라 정부기관중 과학기술에 투자하게 된 부처와 기관이 무려 14개로 확대됐고, 국가연구개발사업도 70% 정도를 타 부처에서 추진하게 돼 정책의 종합조정이 대단히 중요하게 됐다.

제도적으로는 과학기술처가 과학기술정책 수립과 종합조정 역할을 담당하게 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 전체의 과학기술정책과 연구개발 전략을 종합조정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행정기관은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과학기술정책과 종합조정 문제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맡아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미국.일본이 그렇게 하고 있다.

횡적인 관계보다 종적인 관계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더더욱 국가의 최고 책임자가 직접 챙겨야 과학기술정책이 국정 운영의 중심축에 들어갈 수 있다.

둘째, 과학기술 분야에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것들을 효과적으로 연계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과학기술과 고등교육으로 하여금 더 유기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행정체제를 개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구는 주로 과학기술처가 맡고 있고 고등교육은 주로 교육부가 맡고 있다.

과학기술 진흥에 힘쓰고 있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80년대부터 과학기술과 고등교육을 연결해 '고등교육연구부' 또는 '미래부' 라는 형태로 한 부처에서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반드시 선진국형이 우리에게 좋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과학기술체제중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기초연구 능력과 인력이다.

이 문제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구와 고급인력 양성이 한 부처로 통합돼 연구집약적인 고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셋째, 공공부문 과학기술 투자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출연연구기관들을 재조정해야 한다.

출연연구기관들은 크게 네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연구개발 결과가 이를 필요로 하는 수요자에게 효과적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수단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데 있다.

초기에 들어온 유능한 연구인력이 노령화돼가고 있는데 비해 젊은 박사급 연구인력은 연구소보다 대학을 선호해 연구소내의 사기를 심각하게 저하시키고 있는 점도 문제다.

연구개발 활동을 도와 줄 하급 연구인력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세부항목 예산제도 역시 연구소 경영을 경직되게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첫 세가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출연연구소에 소규모의 연구중심적 단설대학원 과정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연구개발 활동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이 새로운 지식이 학생에게 체화돼 졸업과 동시에 기업이나 다른 연구기관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기술이전 방법이다.

또 연구 능력이 탁월한 젊은 박사급 연구원들에게 연구에 몰두하면서 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줌으로써 유능한 젊은 인력의 확보가 가능해지며, 대학원생들이 연구조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하급 연구인력 확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은 일찍부터 출연연구기관에 대학원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마지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총액 예산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기업.대학의 연구소가 발전하게 됨에 따라 출연연구소의 역할도 재정립돼야 한다.

그러나 충분한 준비 없이 행정적으로 일시에 통폐합하거나 민영화하려는 시도는 연구소의 근본을 흔들게 됨으로써 연구생산성을 떨어뜨리게 돼 국가적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차라리 연구소마다 새로운 목적을 설정하고 3년~5년 정도의 기간을 정해 준 다음 그 기간내에 연구를 계속하면서 스스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민간부문의 기술혁신 투자 효율성도 획기적으로 제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금융.조세.정보제공.기술지원 등 여러 가지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이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유능한 기술인력의 부족이다.

적은 연구비로도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고급인력이 충분히 공급된다면 연구개발 투자의 효율성은 획기적으로 제고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대학들을 질적으로 선진국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대학의 선진화를 위해 집중투자하고 있는 싱가포르.홍콩.대만 등의 나라에서 배워야 한다.

우리 경제가 선진국형으로 변모하려면 적어도 10여개 대학은 세계 1백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얼마전 어느 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가 8백위 수준이라고 한다.

대학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나 요즘 경제상황에서 우리 정부나 기업이 그 재원을 마련해 주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오직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20조원에 가까운 사교육비 일부를 끌어들이는 일이다.

다섯째, 기술집약 중소기업이 많이 창업되도록 환경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기존 중소기업의 기술력 향상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기술집약 중소기업 창업은 산학을 연결하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며, 급변하는 기술환경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창업금융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국제경쟁을 할 수 있는 기술력도 중요하다.

이런 벤처기업은 주로 연구집약적 대학원에서 배태되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도 기초연구와 고등교육이 시너지를 내도록 국가체제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김인수〈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장·고려대 경영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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