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법과 정치의 경계에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그런데, 이건 아닙니다. 법리에는 맞을지 몰라도 민주화의 고통스러운 계곡을 20년 통과해온 예의지국의 정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 대통령 노무현은 군사정권의 대통령들과는 역사적 의미를 달리합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이 모두 흠집이 있다는 것은 세계가 다 아는 슬픈 사실입니다. 그래서 감옥을 갔고, 아들이 수인(囚人)이 되거나, 대리인이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군부정권의 대통령들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수백 명을 죽였고, 수천억을 감췄습니다.

그런데 민주시대에 민주시민이 민주적으로 뽑은 대통령을 ‘법의 이름’으로 감옥에 보낼 그 비장한 심판을 내리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법을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법 앞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사법부의 추상 같은 원칙을 몰라서도 아닙니다. 사법부의 논리에 따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환통지서를 들고 포토라인에 불려 나오는 장면에는 법의 승전가가 울렸지만, 그 배경에는 민주시민의 자살을 추모하는 장송곡도 동시에 연주되고 있었다는 것을 누가 감지라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의 전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 경우에도 검찰은 록히드 뇌물을 입증하는 데 18년씩이나 신중을 기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법의 정의’보다도 대한민국 국민이 스스로 지켜야 할 자존심과 명예가 통째로 매장되는 모습을 목도했습니다. 제 손으로 뽑은 민주시대의 대통령의 명예는 유권자들의 것이기에 우리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밝혀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범법 행위는 많은 논객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듯 구차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설사 그가 잡범 수준으로 행동했다고 해도, 꼭 이런 식으로, 마치 동네 사기꾼을 다루듯 거칠게 다스려야 법의 정신이 지켜지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어쨌든 대한민국의 안위를 수호하던 통치자였습니다. 저항도 비난도 유별나게 많이 받았던 사람이지만, 어쨌든 그는 통치자였습니다. 그렇다면, 법의 집행 방식도 달라야 합니다. 그게 국민에 대한 예의이기도 합니다. 추국(推鞫)이 아니라 사간(死諫)의 법도를 어기지 않았는지를 묻고자 합니다. 민주시민의 ‘집단 주권’을 한때 합법적으로 행사했던 사람에게도 수뢰 여부와 용처를 시시콜콜 따지고 대질심문 으름장을 놓는 용렬한 방식을 당연스레 적용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법의 정신’인지를 묻고자 합니다. ‘법의 정신’이라는 만고불변의 수레바퀴에 ‘국민의 선택’과 ‘선택에 수반된 명예’가 깔려 죽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어느 것을 구출할 것인가는 사실 법을 넘어 정치의 영역에 속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현 정권의 어정쩡한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국민의 명예와 정치의 품격이 달려 있는 이 중차대한 문제를 ‘검찰의 자율성’에 무작정 던져두는 것이 올바른 처사라고 생각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수보다 더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잡범 수준의 통치자라도 난도질 당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유권자가 위임했던 주권을 난도질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구차스럽고 소소한 위법 행위를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포괄적으로’ 판결한 뒤, ‘포괄적으로’ 사면하는 현명하고 세련된 정치는 불가능한지를 묻고자 합니다. 정치란 우리 모두를 ‘법의 수인(囚人)’이 되지 않게 하는 유일한 출구입니다. 위법을 감추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자존심’과 한때 우리의 주권을 위임했던 ‘통치자의 명예’를 동시에 구제하는 방식에 대한 고통이 필요합니다. 법과 정치를 잇는 고통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기차가 ‘수감’보다는 ‘용서’라는 이름의 종착역에 닿기를 바랍니다. 그는 민주시대에 우리가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었습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