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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국제금융계 큰손 조지 소로스…"한국관료 위기관리에 문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조지 소로스를 국제금융의 사부 (師父 = Guru) 로 부르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어느 나라에서 투기자금을 빼가면 그 나라는 금융위기를 맞고 경제가 흔들린다.

소로스의 별난 점은 역사와 철학에 일가견을 갖고 있는 지성인이면서 투기에 관한 체계적인 이론을 세운 '공부하는 투자가' 라는 것이다.

약관의 나이에 맨주먹으로 금융시장에 뛰어들어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5명의 '초인' 에 든 소로스는 지금은 돈을 버는 일 못지 않게 돈을 쓰는 일에도 골몰하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7번가 오피스 빌딩 32층에 세들어 있는 그의 사무실은 센트럴 파크의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 본다.

당초 40분을 약속한 인터뷰는 결국 60분만에 끝났다.

중앙일보 = 한국의 금융.외환위기 해결은 시간을 다투는데 늦기전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소로스 = 위기는 정말 심각합니다.

단순한 유동성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기업들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없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 거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99년 중반에 가서야 한국경제가 호전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현실적인 전망이라고 생각해요. 중앙일보 = 한국은 문제해결의 방향을 올바로 잡고 있습니까.

소로스 =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보입니다.

그러나 노사정 (勞使政) 이 협력하지 않고는 안돼요. 내가 걱정하는 건 정부 관료들입니다.

그들은 지금의 위기를 초래한 바로 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요.

중앙일보 = 지금도 김대중당선자와 연락합니까.

소로스 = 한국을 다녀온 뒤 편지를 썼습니다.

가능하면 도와드리겠지만 나는 한국인들 보다 나의 한계를 더 잘 압니다.

중앙일보 = 한국 대표단과 미국 은행들의 협상에서 미국 은행들이 너무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있는데요.

소로스 =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나는 당사자가 아니고 옵서버의 위치를 지키고 있어요.

중앙일보 = 미국 의회가 국제통화기금 (IMF) 을 앞세운 한국지원에 반대를 하고 있는데 클린턴대통령이 이 문제를 잘 해결할 걸로 봅니까.

소로스 = 그건 클린턴이 해결할 일이 아닙니다.

한국이 의회를 설득해야 합니다.

클린턴은 민주당 대통령이고 의회는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지원의 타당성을 설득하는 것은 한국이 할 일입니다.

중앙일보 = 지금의 아시아 금융위기가 오래 가면 중국이 위안 (元) 화를 평가절하할 위험은 없습니까.

소로스 = 중국 경제가 심각합니다.

투자가 절반으로 줄었고 중국에 투자한 화교들은 큰 손해를 보고 있어요. 한국과 다른 동남아국가들의 화폐가치가 폭락해 중국은 수출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수출감소를 감수해야 할 처지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그들의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하면 다른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중국은 위안화를 평가절하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할 걸로 봅니다.

중앙일보 = 일본의 적극 참여없이는 문제해결이 어려운데 일본은 제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봅니까.

소로스 = 일본은 자체의 위기가 심각해요. 일본은 재정으로 금융부실을 정리하고 경기를 자극해 세계경제를 불황으로 모는 또 다른 원인을 제공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치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중앙일보 = 일본이 엔화가치를 더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습니까. 소로스 = 엔화가치가 더 떨어지지 않게 최선을 다할 겁니다.

중앙일보 =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먼 (MIT교수) 은 아시아의 성장이 한계에 왔다고 주장해 주목받고 있습니다.

아시아 시대는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나는 겁니까.

소로스 = 아시아의 성장은 끝나지 않았어요. 아시아의 성장을 가능케 한 기본 조건들이 건재해요. 그건 아시아 사람들의 근면성과 높은 지적 수준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건 이제 아시아의 성장모델은 효력이 없다는 겁니다.

한국과 아시아가 성장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경제시스템이 지금까지의 모델을 대체해야 해요.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한국은 훨씬 희망적입니다.

정치발전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인도네시아에서는 정치적인 변화의 조짐이 안보여요.

중앙일보 = 크루먼의 주장 가운데 어느 부분이 틀립니까.

소로스 = 아시아가 성장을 멈춘다고 하면 그건 틀린 말이고 아시아 모델로는 안되겠다고 하면 그건 옳은 진단입니다.

근본적으로 정경유착 관계인 아시아 모델은 파산했기 때문입니다.

중앙일보 = 한국은 얼마나 열린 사회입니까.

소로스 = 나는 한국을 잘 몰라요.

중앙일보 = 북한에 열린 사회 재단을 설립할 계획이 있습니까.

소로스 = 그들이 받아들이면 진출합니다.

중앙일보 = 내가 만약 퀀텀 펀드의 대표단으로 한국에 파견됐다면 내게 어떤 지시를 하실 겁니까.

소로스 = 우리는 약간의 주식투자를 했는데 우리의 역할이 과장되고 있어요. 우리는 지금 시장조사를 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그러나 한국이 필요로 하는 건 외국인들의 주식투자이고 그게 우리 전문분야이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준비중입니다.

중앙일보 = 채권은 매력이 없습니까.

소로스 = 채권에도 투자할 수 있지요. 그러나 채권은 기업의 구조조정이 이뤄질 때만 매력 있어요.

중앙일보 = 요즘의 아시아 위기를 보면 미리 예측하지 못한 일이 시장에서 먼저 벌어지고 정부나 학자들은 고작 이를 수습하거나 해석하는 역할에 그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소로스 = 나는 대부분의 서구 경제학자들과 달리 시장을 크게 믿지 않습니다.

시장원리에 따라야만 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아요. 시장은 본질적으로 불안한 것이고 금융시장 등 신용에 관계된 분야는 특히 더 그래요. 시장에만 맡겨 둬서는 안정을 찾을 수 없고, 사회의 이익은 시장만으론 보호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장원리 이상의 어떤 원리가 필요하고, 여기에 정부.국제기구 등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중앙일보 = '열린사회 재단' 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 입니까.

소로스 = 사람은 언제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고, 따라서 사회는 변화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떤 사회도 완벽할 수 없고, 그렇다면 변화를 수용해 발전하는 것만이 차선책이니까요.

중앙일보 = 돈의 가치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소로스 회장에게 돈은 무엇입니까.

소로스 = 내게 돈은 자유를 의미합니다.

중앙일보 = 가난한 사람에게는 자유가 없군요.

소로스 = 덜 자유롭지요.

중앙일보 = 뜨거운 가슴으로도 돈을 벌 수 있습니까.

소로스 = 돈은 가슴이 아니고 머리로 벌어요. 사회적인 양심은 돈벌이를 방해합니다.

중앙일보 = 한국 방문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습니까.

소로스 = 나는 한국을 잘 모르지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어요. 그러나 동시에 부정적인 생각도 듭니다.

지금 막 붕괴되고 있는 그 시스템은 정말 문제가 많아요.

중앙일보 = 이름난 독서가인데 지금은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소로스 = 오스트리아 출신의 헝가리 경제사학자 카를 폴라니의 '대전환' 을 다시 읽고 있어요. 자본주의제도를 분석한 책으로 1944년에 출판된 건데 오늘의 사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중앙일보 = 바쁘신 시간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 = 김동균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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