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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한 공단의 설…감봉·無상여에 귀향 엄두 못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설 연휴와 귀향이 사실상 시작되는 24일 오후1시 서울구로구구로동 한국산업단지공단 북부지역본부 앞. 점심식사를 마친 근로자 몇명이 주머니 깊숙이 손을 찔러넣은 채 종종걸음을 치고 있다.

여느해 같으면 고향 가족들에게 줄 선물꾸러미를 들고 회사측이 준비한 버스에 오르는 근로자들로 한창 붐빌 때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귀향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설 때면 흔하게 나붙던 '즐거운 고향길 되십시오' 라고 적힌 플래카드 하나 찾아볼 수가 없다.

3백여개 업체가 입주한 구로공단에서 올 설 명절은 아예 실종된 것 같았다.

"고향요? 마음도 호주머니도 다 얼어붙었는데 고향 갈 여유가 있나요. 올해는 못내려간다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3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출판업체 K사 근로자 朴모 (23) 씨는 추석때나 고향에 갈 수 있을 것이라며 발길을 서둘렀다.

예년 같으면 선물을 마련하려는 근로자들로 한창 붐볐던 공단내 의류업체 직영매장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80~90% 폭탄세일' 까지 내걸었지만 손님이 거의 없어 개점휴업 상태다.

"처음부터 큰 기대는 안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대대적인 할인판매까지 하고 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찾아온 손님이 30명도 안됩니다." 가리봉역 부근의 공장직영 숙녀복 할인매장의 직원 金모 (24.여) 씨는 매기 (買氣) 를 물어보는 말에 한숨을 내뱉았다.

보너스는커녕 월급마저 깎은 업체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설대목 실종은 당연한 일이다.

그나마 보너스를 지급한 업체들도 예년엔 50~1백% 지급하던 것을 20만~30만원 정도에서 정액으로 지급했다.

전자부품 생산업체인 H전자에 근무하는 李모 (30) 씨는 "보너스요. 기대도 안했어요. 월급이라도 제때 나온 게 어딥니까. 부품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 회사 사정을 빤히 아는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구로공단 관리를 맡고 있는 북부지역본부 관계자는 "연휴를 앞두고 실시한 설 연휴기간 조업여부 조사 결과 종업원 1백인 이상 업체는 단 한 곳도 문을 열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며 "예년 같으면 수출물량을 대기 위해 몇군데씩은 문을 열었는데 올해처럼 '전멸' 해버린 경우는 10여년 근무하는 동안 처음 본다" 고 말했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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