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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쾌속 거함’ 중국의 딜레마와 한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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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올림픽을 즈음해 신축된 수도박물관이나 CC-TV 타워의 당당한 모습만이 아니라 통계수치로 볼 때도 확연하다. 윌리엄 윌슨이라는 이코노미스트는 각국의 성장 속도를 측정했다. 영국은 국내총생산(GDP)이 두 배로 증가하는데 58년, 미국은 47년, 일본은 34년, 한국은 11년 걸렸다. 그런데 중국은 9년밖에 안 걸렸고, 9년 후 다시 두 배로 증가했다.

이처럼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중국, 그리고 2조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지닌 중국이니까 이제 미국과 함께 위풍당당하게 G2의 역할을 할 것 아닌가? 요즈음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곳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모두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그러기에는 내부 문제가 너무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결국 국력 신장에도 불구하고 내부적 취약점이 역설적으로 중국으로 하여금 빛을 감추고 실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린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노선을 버리지 않게 하고 있다.

중국은 고속 경제성장을 하면 할수록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그 한 예가 환경 문제다. 올 연말이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국제협상이 열린다. 모두 중국을 주목하고 있지만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기대처럼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할 것 같다. 국제적 압력뿐 아니라 환경오염 피해 주민들로부터의 국내적 압력도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만 강조하다 보면 경제위기 아래에서 성장률은 더 하락하고, 실업자가 양산돼 사회적 불만이 커질 것이다. 중국은 환경과 경제발전의 두 목표 사이에서 어렵사리 줄타기를 하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고속 경제성장 탓에 약화되기 쉬운 중국 사회의 통합력을 어떻게 유지하고, 사회 안정을 이루어낼 것이냐는 점이다. 경제성장을 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빈부격차, 특히 도시와 농촌, 해안의 개발지대와 내륙의 미개발 지대 간의 격차를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큰 과제다. 이것이 되지 않아 사회가 분열되고 경제위기로 실업까지 늘어나 공산당에 대한 지지기반이 약화되는 것을 정치지도자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다. 2003년 주룽지 총리는 총리직 퇴임 인사에서 관리들에게 “새로운 상황에서 인민들 사이의 내부적 갈등을 확실하게 다룰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중국 사회의 통합과 관련해 또 다른 핵심 문제가 민족통합 문제다. 그들은 1991년 소련의 해체를 잊지 않고 있다. 대만과의 통합에 더해 티베트·신장 지역 등 소수민족들을 어떻게 통합해낼 것인가도 중요한 과제다. 이는 중국의 한반도 정책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일이 조선족이 많이 사는 동북지역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가장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점이다.

90년대 중반 한국의 고위급 인사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측은 아예 내놓고 중국 동북지역에서 한국인들의 민족주의적 행동을 자제해 주도록 요청했다고 한다. 이미 이때부터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한국인들의 중국 내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북한 문제나 한반도 미래에 대한 중국의 협조 여부도 그것이 중국의 조선족 통합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소, 제3차 세계대전을 피했던 케네디 대통령의 성공적 외교의 핵심은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기’였다. 그는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는 대신 미국은 터키에 배치된 노후된 미사일을 수개월 후 비밀리에 빼내겠다는 약속으로 그들의 체면을 살려 주며 문제를 해결했다.

이처럼 냉철한 판단으로 상대방 의도를 정확하게 읽어 내고 그것과 우리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성공적 외교의 핵심일 것이다. 친중이냐 반중이냐, 친미냐 반미냐와 같은 내용 없고 분열적인 수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식의 대책 없는 감성논리는 오히려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어둡게 할 것이다.

윤영관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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