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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김현희 카드로 '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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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 김현희가 결혼 이후 3년 만인 1997년 12월 24일 모습을 드러냈다. 김씨는 설날인 이날 오후 성묘를 위해 경주 시댁을 나서다 사진에 찍혔다. [조문규 기자]

국가정보원 측이 1987년 11월 발생한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인 김현희씨에 대한 외부의 직접 조사에 응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김씨가 의혹을 풀 핵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 유가족 등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돼 온 의혹이 정치권의 진상조사 입법으로까지 번지자 더 이상 김씨를 감춰둘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나아가 '북한의 지시에 의해 115명이 사망한 테러사건'이라는 본질을 벗어난 논란이 계속 될 경우 국가 정보기관의 공신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한 배경이다.

정부 당국자는 "국정원이 858기 사건에 대한 '진실게임'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김현희 카드를 빼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의문사 조사 대상에 858기 사건을 포함시키자는 의견이 제기된 4일 국정원은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적극 대응 방침을 정했다.

국정원은 그동안 "김씨의 자유의사를 존중해 관련 단체나 언론의 접근을 허용치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 때문에 의혹을 제기해 온 유가족 등은 국정원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런 입장을 바꿨다는 것은 진상규명을 위해 마지막 성역까지 공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 있다.

김씨의 공개증언이 이뤄질 경우 사고 당시 김현희와 공범 김승일(당시 음독자살)의 이동경로와 북한 당국의 지령 내용 등 안기부의 수사 내용이 구체적으로 재검증될 수 있다. 또 수사과정에서 다소 허술했던 대목 때문에 불거진 의혹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란 게 국정원 측의 기대다.

그러나 김씨가 자신에 대한 조사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관심이다. 이미 '평범한 여자'로 살겠다는 입장을 밝힌 김씨가 신변 위협을 무릅쓰고 공개석상에 얼굴을 내밀지 미지수다. 한 관계자는 5일 "김씨의 증언이 필요한 시점이 오면 적극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김씨를 다시 내세워 858기 사건을 재론하는 것이 혹 북한 측을 자극하는 뜻밖의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영종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신분 토출 꺼려 이름 바꾸고 거처 자주 옮겨

◇김현희씨의 근황은="지난해 11월 한 방송사 취재진이 집에 들이닥친 뒤부터는 동가식서가숙하고 있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에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생활하고 있는 김현희(42)씨의 근황을 묻자 관계 당국자는 "당시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서울지역에서 거처를 옮겨가며 남편 정모씨와 두 아이(4세, 2세)와 함께 살고 있다. 이름을 바꾼 그는 머리 모양도 수시로 달리하며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쓴다고 한다. 그는 자서전 인세 수입과 신앙간증을 통해 받는 후원금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최근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재조사 주장이 나오면서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당국자들의 얘기다. 김씨는 1987년 11월 국가안전기획부에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90년 4월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다. 이후 자신을 경호했던 안기부 직원과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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