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몸살앓는 지구촌 한인들]4.시장잃은 중국진출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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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국 산둥 (山東) 성의 대우시멘트공장 경영진은 요즘 외국바이어 찾기에 혈안이 돼 있다.

한국 및 동남아시장을 목표로 연산 2백50만t 규모의 시멘트공장을 지난해 7월 가동했지만 최근 동남아지역의 금융위기로 수출길이 완전히 막혔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전만 해도 t당 37달러면 가격경쟁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환율이 2배 가량 뛰면서 중국산 시멘트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 내수시장도 이미 포화상태여서 쏟아져 나오는 물건을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다.

업종이나 기업규모를 불문하고 주력시장을 한국.동남아로 삼고 있는 중국진출 기업들은 모두 죽을 맛이다.

한국의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지난해 11월 이후 신용장 개설이 어려워지면서 종전까지 월 20%대의 증가율을 보였던 대중 (對中) 수출실적은 11월 10%, 12월 8.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중국진출 기업 대부분이 한국에서 원자재를 들여온 뒤 가공해 재수출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금융위기의 파고 (波高)가 차츰 현지기업에도 미치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중국기업들의 제살깎기식 가격파괴 경쟁도 관련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1년 동안 무려 30~40% 가량 가격이 인하된 컬러TV.VCR.전자레인지 등 가전제품이 대표적인 예다.

소비자들도 '기다리면 더 싸진다' 는 기대심리로 구매를 미뤄 대량생산설비를 갖춘 삼성.대우.LG 등이 속을 태우고 있다.

삼성 중국본부 김종학 (金鍾學) 상무는 "현금확보와 부족한 달러 보충을 위해서는 중국시장 개척과 제3국 수출밖에 길이 없다" 면서 "수출처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대기업 판매망을 통한 중소기업제품 수출을 모색하고 있다" 고 말했다.

또 중국 각지에 난립한 한국 식당.가라오케 등 유흥업소들도 IMF한파라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주고객인 한국인들의 발길이 갑작스레 끊겼기 때문이다.

새로운 메뉴 개발,가격인하 등으로 뒤늦게나마 중국인들을 겨냥한 '현지장사' 에 나서고 있다.

산둥성과 랴오닝 (遼寧).지린 (吉林) 성등에 진출한 중소기업들은 희비가 엇갈린다.

외환위기 이전에 자금을 들여와 공장을 지었기 때문에 원화기준으로는 자산가치가 2배 가량 늘어나 불행중 다행이다.

하지만 한국산 원자재를 임가공해 다시 한국으로 들여가는 섬유.신발 등 경공업제품은 원화가치의 급격한 평가절하로 거래가 잘 안되는 데다 가격경쟁력마저 떨어져 적잖은 공장이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환율폭등으로 이미 계약한 투자를 파기하거나 운영자금 확보와 원자재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이에 비해 물건을 현지에 내다파는 기업들은 싱글벙글이다.

한국산 원자재값이 달러기준으로 볼 때 절반 가량 싸진데다 판매대금을 국내에서 달러로 결제하면 막대한 환차익이 붙기 때문이다.

산둥성 웨이하이 (威海)에서 열쇠공장을 운영하는 팔달기계의 관계자는 "처음부터 중국시장을 겨냥한 전략이 맞아떨어졌다" 며 "한국과 인접한 산둥성에는 최근 각종 경로로 들어온 한국산 물건들이 넘쳐 흐르고 있다" 고 전했다.

베이징 = 문일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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