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실업시위 왜 불길 못잡나…저성장·고실업 한계 도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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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프랑스의 실업자 시위사태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5주를 넘긴 실업자들의 시위는 지난 17일에도 파리를 비롯, 툴루즈.몽펠리에.루앙.마르세유.리모주 등 프랑스 전역에서 2만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계속됐다.

실업자들은 이날 각종 사회단체들의 동참 아래 지난해 12월11일 실력행사에 돌입한 뒤 세번째로 가두시위를 벌이고 정부에 최저생계보조비 월 1천5백프랑 (2백50달러) 인상 등을 촉구했다.

리오넬 조스팽 총리의 프랑스 좌파 정부는 앞서 최저생계비를 99년부터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으나 실업자들은 당장 이를 단행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시위사태는 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프랑스 경제의 '저성장.고실업' 구조가 이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90년대초까지만 해도 프랑스는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실업에 따른 사회불안 요인을 그런대로 흡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로 인한 막대한 재정적자는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지난해말 프랑스의 누적 국가채무는 무려 3조8천억프랑 (6천3백50억달러) .사회보장부문 결손을 차입으로 메우다 보니 나라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현재 프랑스의 실업자는 3백50만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2.4%에 달한다.

프랑스 정부는 이들을 비롯한 빈곤층에 8가지의 각종 생계보조비를 지원하고 있다.

생계대책이 전무한 사람들에게 지급하는 월 2천4백~3천6백프랑의 최저생계수당 (RMI) 과 1년 이상 장기 실업자들에게 주는 월 최고 2천2백프랑의 특별연대수당 (ASS) 같은 것이 대표적 예다.

이같은 생계보조비에 의존해 사는 가구수는 약 3백30만가구로 전체 인구의 10분의1인 6백만명 정도가 정부 보조로 연명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돈으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으니 이를 일률적으로 1천5백프랑 인상해달라는 것이 시위대의 요구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연간 2백70억프랑의 예산이 추가로 소요되고 재정적자는 유럽단일통화 가입기준인 국내총생산 (GDP) 의 3%를 넘어 3.5%까지 확대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이들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월 5천2백40프랑인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와의 역차별 문제가 생긴다는 점도 딜레마다.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느니 차라리 생계수당이나 받으며 놀고 지내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1~2%에 머무르고 있는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하는 것 뿐이다.

5% 성장이 5년간만 지속되면 실업문제의 완전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프랑스 정부는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냉전종식 이후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경제의 세계화는 전통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이념에 치우쳐온 프랑스의 경제회생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프랑스 기업들은 국가 지도형 자본주의를 버리고 미국이나 영국처럼 완전 자유경제를 보장하는 것만이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첩경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 야만주의' 라는 게 대다수 프랑스 정치엘리트들의 인식이다.

비록 실업률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이른바 자본가들에 의한 착취구조가 더욱 고도화함으로써 '일하는 빈민층' 을 양산하고 계층간 갈등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란 게 이들의 뿌리깊은 생각인 것이다.

파리 =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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