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2월 여객선 폭발 테러 '쉬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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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 2월 27일 오전 1시 필리핀 마닐라만(灣). 승객 877명을 싣고 조용히 밤바다를 항해하던 호화여객선 '수퍼페리 14호'의 기관실이 갑자기 폭발했다. 1만192t급의 여객선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승객들은 불길을 피해 앞다투어 바다로 뛰어들었다. 주변을 지나던 소형 여객선과 어선들이 달려와 구조했으나 188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필리핀 당국은 "기관 고장에 의한 사고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외신들은 이슬람 과격단체에 의한 테러라고 보도했다.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치안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알카에다와 관련된 납치테러조직인 '아부 사야프'의 소행"이라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필리핀 당국은 공식 발표와는 달리 이 사건을 일찌감치 테러단체가 저지른 일로 확신했다. 실제로 사건 이틀 후 아부 사야프는 베트남 방송사를 통해 "수퍼페리 화재는 우리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지난 4월에도 아부 사야프는 두건의 여객선 폭발 테러를 계획했으나 실패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필리핀 당국이 사고라고 주장한 이유는 이를 밝힐 경우 다른 테러단체들을 부추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게 요미우리의 분석이다.

신문은 이어 "유사한 테러가 말라카 해협에서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게 이 지역 치안담당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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