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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엔 스파게티를 … ‘영양사 히딩크’의 주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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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옛날엔 결승전이 열리기 전날엔 고기 먹어야 힘쓴다고 배 터지게 먹었지.” 1960~7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명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린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의 증언이다. 4월도 이제 막바지, 봄도 무르익어 간다. 운동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선수들의 플레이를 눈으로 보는 것도 즐겁지만 아마추어들로선 직접 운동장에 나가 땀 흘리며 달리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행복하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선수들은 운동할 때 어떤 음식을 먹을까’ 하는 점이다.

◆구기종목은 경기 전에 탄수화물=히딩크 감독 부임 후 축구 대표팀은 경기 3~4시간을 앞두고 반드시 스파게티를 먹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히딩크의 주문 때문이었다. 운동에너지로 가장 효율적으로 전환되는 영양소가 탄수화물인데, 스파게티야말로 탄수화물의 보고다. 탄수화물은 소화도 잘 돼 전 종목을 망라해 경기 전 가장 권장되는 영양소다. 반대로 단백질과 지방은 별 도움이 안 된다.


태릉선수촌의 조성숙 영양사는 “외국인이 가장 손쉽게 섭취할 수 있는 탄수화물 음식이 스파게티여서 히딩크 감독이 선택한 것 같다”며 “우리나라의 국수나 쌀밥도 더 없이 좋은 경기 전 메뉴”라고 말했다.

축구·농구와 달리 에너지 소모가 크지 않은 야구는 경기 전 식단에 융통성이 많다. 축구·농구는 소화시키는 시간을 고려해 경기 3~4시간 전에 식사를 하지만 야구는 경기 1~2시간 전에 라커룸에서 바나나·양갱 등 간식 형태로 음식을 섭취한다.

◆마라톤과 육상 100m=마라톤은 근지구력이 요구되는 종목이지만 단거리 달리기는 근육의 폭발적인 힘이 중요하다. 따라서 섭취 영양소도 다르다. 마라톤은 체내 탄수화물 저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1주일 전부터 식사 조절에 들어간다. 처음 사흘 동안은 지방을 제거한 순살코기로 매끼 식사를 하며 체내 지방과 탄수화물을 태운다. 이후 대회 3일 정도를 앞두고는 탄수화물 위주로 식단을 바꾼다. 비워둔 곳간에 탄수화물을 가득 비축하는, 이른바 ‘탄수화물’ 로딩이다. 이것이 마라톤에서 죽음의 구간이라 여겨지는 30km 이후에 힘을 발휘한다.

육상 100m에서는 탄수화물 로딩같은 특별 관리는 없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단거리 3관왕에 오른 우사인 볼트(자메이카)는 100m 우승 뒤 “치킨 너겟을 먹고 낮잠을 자느라 경기에 늦을 뻔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기름에 튀긴 너겟은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안 되지만 고작 10초 안팎에 승부가 결정되는 100m 달리기에서는 큰 변수가 되지 않았던 셈이다. 대신 평소에는 탄력 있는 근육을 만들기 위해 양질의 단백질을 많이 섭취한다.

◆유도·레슬링은 체중과의 전쟁=체급 종목은 체중 줄이기에 안간힘을 쓴다. 계체를 앞두고는 물 100cc로 하루를 버티기도 한다. 레슬링 선수 정지현은 감량의 고통에 대해 “죽음이 무엇인지 실감날 정도”라고 표현했다. 대회 하루 전 계체가 끝나고 나면 죽과 따뜻한 음료로 보양을 시작한다. 오후부터는 폭식을 하기도 한다. 정지현은 “하룻밤 새 4~5㎏이 불어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유도는 레슬링과 달리 경기 당일 아침에 체중을 잰다. 결승까지 가면 하루 5~6경기를 치러야 한다. 때문에 유도 선수들은 틈틈이 죽과 곰탕을 먹어 가며 체력을 회복하고 매트 위에 다시 선다.

피겨와 리듬체조 선수들도 항상 ‘살과의 전쟁’을 치른다. 김연아는 지난달 세계선수권 직후 “한국에 돌아가면 먹고 싶은 음식을 실컷 먹겠다”고 말했다. 체중이 몇 그램만 늘어도 동작이 둔해지고 착지 때 자세가 불안해 지기 때문에 항상 배고픈 가운데 운동을 해야 한다. 오죽하면 신수지(리듬체조)가 “장미란 언니가 부럽다”고 했을까.

◆양궁·사격은 한식파=기록종목 선수들은 예민하다. 그래서 해외출장 때에도 가급적 먹던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다. 베이징 올림픽 양궁 남자대표팀 장영술 감독은 “몸 상태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입에 맞지 않는 현지식보다는 국제경기 때도 한국음식을 먹게 한다”고 말했다.

양궁협회는 세계선수권·올림픽 등 국제대회 때마다 한국 식당을 섭외해 최고급 수준의 한식 도시락을 싸서 경기장에 전달한다. 변경수 사격 대표팀 감독은 “배탈나지 않는 데 더 큰 신경을 쓴다. 날것이나 어패류, 처음 먹어본 음식은 먹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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