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국새(國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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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일합방조약은 1910년 8월22일 조인됐지만 사실상 그보다 5년 전인 1905년 11월17일의 을사보호조약 체결로 대한제국은 종언을 고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외교권을 일제 (日帝)에 넘겨 줬다는 의미가 크지만 무엇보다 국가의 주권을 상징하는 '국새' 를 탈취당했기 때문이다.

일제가 조약체결에 앞서 국새 확보에 신경을 곤두세웠음은 당시 외무대신 박제순 (朴齊純) 과 함께 조약체결의 주역이었던 일본의 특명전권대사 하야시 곤스케 (林權助) 의 회고록에 잘 나타나 있다.

회고록에따르면 하야시는 조약체결 직전 서울에 온 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 를 만나 조약체결과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를 협의했다고 한다.

고종 (高宗) 황제와 대신들을 회유.협박하는 이런저런 방안을 제시하면서 하야시는 국새문제에 대해 이토에게 이렇게 보고한다.

"사전조치로는 하세가와 (長谷川) 대장에게 부탁해 요소요소를 엄중히 경계토록 했습니다…그밖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은 국새문제입니다.

저는 아침 일찍 외무성에 사람을 보내 국새관리관을 철저히 감시하도록 하겠습니다.

" 조약을 체결하고 난 후 일제의 첫 조치가 국새와 대신들의 관인 (官印) 을 탈취하는 일이었다.

갑오경장 (甲午更張) 이전까지만 해도 국왕의 여러 가지 목적에 사용된 국새들은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도승지의 책임 아래 상서원 (尙瑞院) 이 제작.보관.관리했으나 대한제국 수립 이후에는 외교문서 등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외무성이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는조약체결과 함께 국새를 탈취해 온갖 문서에 멋대로 사용했지만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였을 뿐 나라와 민족의 정신까지 탈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국새의 강탈만으로 대한제국이 자신들의 수중에 들어온 것으로 자부했고 마침내 합방조약으로까지 발전하기에 이른다.

오늘날에야 국새를 도둑맞았다 해서 나라를 빼앗긴 것으로 간주되지는 않지만 국새는 훈.포장증, 임명장, 외교사절의 신임장 등 국가 주요문서에 날인되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대통령이 바뀌면 당연히 국새의 주인도 바뀌니 엊그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총무처가 관리중인 국새를 확인.공개했다.

인수하는 측이야 흐뭇하겠지만 국새 사용에는 막중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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