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재벌정책]일본, 지주회사 설립 작년부터 허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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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기업의 소유.지배구조중 가장 특이한 것중 하나는 '지주 (持株) 회사' 가 없다는 점이다.

'재벌' 이란 독특한 형태의 기업조직이 한국에 자리잡게 된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바로 지주회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과 유사했던 일본의 예는 주목된다.

도쿄미쓰비시 (東京三菱) 은행이 2년전 경영위기에 처한 일본신탁은행을 자회사방식으로 구제할 때 동원했던 자금은 2천억엔 (2조6천억원) 이었다.

그러나 도쿄미쓰비시가 일본신탁은행 주식의 10%를 추가매입, 지주회사 형태로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면 필요자금은 50억엔에 그쳤을 것이란 게 도쿄 금융가의 추산이다.

지주회사는 스스로 사업을 벌이지 않으면서 주식 소유만을 통해 자회사를 지배하는 회사형태를 말한다.

지주회사는 인사.노무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합병과 같은 효과를 내고 합병에 따른 세금문제도 피해갈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다.

단지 주식만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자회사중 일부가 경영이 악화돼도 다른 계열사로의 전염을 차단, 경영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점이다.

서구의 대기업은 이 때문에 대부분이 지주회사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유일하게 지주회사를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일본은 패전 후 재벌부활을 방지하기 위한 미 군정 (軍政) 의 조치로 지주회사 설립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일본은 52년만인 지난해 12월 순수지주회사를 허용했으며 올해 3월엔 금융지주회사, 99년에는 NTT를 분할하면서 특별법으로 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해주기로 했다.

이제 한국은 지주회사가 허용되지 않는 유일한 나라로 남는 셈이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지주회사제도가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는 미국의 95년 여름을 더듬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해 불과 넉달동안 미국의 상위 10대 은행의 지주회사중 4개가 합병을 실시, 금융판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시골은행에 불과하던 퍼스트 유니언이 무려 70건의 인수.합병을 통해 랭킹 6위로 뛰어올랐고, 3위의 케미컬뱅킹과 6위인 체이스맨해튼의 지주회사들끼리 주식교환을 통한 합병을 실시, 시티은행의 지주회사 시티코프를 제치고 단번에 1위로 도약했다.

지주회사도 물론 적지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자회사와 지주회사간에 조직중복으로 경영의 기동성이 떨어지기도 하며 잦은 조직개편과 정리해고로 근로조건도 악화된다.

일본에서 지주회사가 허용된 뒤 유통그룹인 다이에가 처음으로 도입했을 뿐 전체 회사의 11.3% 정도가 여전히 검토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니혼게이자이신문 설문조사)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그러나 금융개혁에 따라 다양한 분야의 진출이 가능한 금융업체들이 지주회사 설립에 관심이 많고, 부동산 가격폭락에 따라 재무구조 개선이 급박하고 경영세습 전통이 강한 유통업체들도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소니.도시바 등 소프트웨어나 멀티미디어 분야로 신규사업을 확장하는 제조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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