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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의 제 살 깎아먹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1호 30면

영국 총리 고든 브라운과 재무장관 앨리스테어 달링은 가능한 한 밝은 경제 전망을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국가 부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선진국 가운데 최악의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다 영국 정부가 1930년대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는 바람에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 바람에 영국이 예전의 활력을 되찾는 데 2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돌고 있다.

그렇다고 영국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올해 이 나라 성장률이 -3.5%에 그칠 전망이지만 공격적인 저금리와 경기부양 정책에 힘입어 내년에는 -0.1% 정도는 될 듯하다. 하지만 침체 탈출과 경제 활력 회복은 다른 이야기다. 영국 경제가 침체 탈출과 동시에 활력을 되찾아 탄탄하게 성장하는 단계에 다시 들어설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앞서 말한 대로 영국 정부가 30년대의 세 가지 실수를 되풀이 한 탓이다.

첫째, 브라운의 노동당 정부는 재정적자를 눈덩이처럼 키웠다. 올해 적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1.2%로 예상된다. 돈을 빌려다 메우는 수밖에 없다. 현재 0.5% 수준인 기준 금리를 올려 채권자들을 기쁘게 해야 한다. 고금리 정책은 경제의 발목을 잡기 십상이다.

둘째, 영국 정부가 공적자금을 마구 투입하는 바람에 금융 시스템이 사회주의처럼 바뀌었다. 영국 은행 자산의 절반이 사실상 국유화된 상황이다. 더욱이 국유화 상태가 조만간 해소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은행 파산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정부의 지분을 팔 수 있는 총리는 적어도 10년 안에 나타나기 어려울 듯하다. 그 기간에 영국 금융 시스템의 효율성은 뚝 떨어질 것이고 경제 성장은 억제될 가능성이 크다.

셋째, 경쟁을 사치로 여기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경기침체를 이겨내야 한다는 이유로 경쟁을 억제하는 정책을 서슴지 않고 있다. 시중은행인 로이즈가 모기지 대출을 주로 하는 주택조합인 HBOS를 장악하도록 허용해 금융 독점을 강화시킨 일이 대표적이다. 이전에는 시중은행이 주택조합을 소유·경영할 수 없었다.

세 가지 실수 때문에 요즘 영국 경제는 프랑스와 아주 비슷해졌다. 세금 부담이 커지고 기업가의 도전정신이 꺾이기 십상인 상황이다. 뛰어난 임직원에 대한 성과급도 예전처럼 후하게 줄 수도 없다.

니컬러스 크래프츠(경제학) 워릭대 교수는 “영국 정부가 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세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며 “그 바람에 50년대와 60년대 저성장 국면이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크래프츠의 분석대로라면 영국 경제는 앞으로 20년 동안 활력을 잃고 저성장에 시달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악순환의 시작이다. 영국 경제가 연간 1%만 성장하면 실업률이 높아진다. 실업보험 등 재정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고금리 정책을 불러 경제성장을 억제한다.

영국 정부는 미국이나 독일보다 파격적이고 공격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일부 전문가들한테서 칭찬을 받고 있다. 또 영국 경제가 침체에서 미국이나 독일보다 빨리 탈출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영국 정부의 파격적인 시장 개입이 장기적인 성장엔진을 부숴버리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이나 독일보다 낮은 저성장 국면이 20년 동안 펼쳐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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