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즐겨읽기] 어딘가 있지만, 찾을 수 없는 평화의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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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우주피스 공화국
하일지 지음, 민음사
296쪽, 1만1000원
 

사건이 전개되는 공간 배경에 대한 ‘투자’가 미니멀리즘적으로, 최소한으로 억제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도그빌’이나 ‘만달레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소설이다. 소설의 메시지나 내용 면에서는, 누군가의 도착이 끊임없이 지연되는 비논리의 연속인 부조리극 냄새를 풍기는 작품이다.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애타게 했던 ‘고도’에 해당되는 대상이, ‘부조리 소설’이라 할 만한 하일지(54)씨의 이번 소설에서는 바로 ‘우주피스 공화국’이다. 블라디미르나 에스트라공에 해당되는 인물은 소설의 주인공인 40대 동양인 할. 소설은, 아버지의 유골을 고향인 우주피스 공화국에 묻어주기 위해 이를 찾아나선 할의 여정을 그린 것이다.

문제는 우주피스 공화국이 북유럽국인 리투아니아 근처에 실재한다는 얘기가 풍문으로만 전해질 뿐 어디에서도 누구에게서도 그런 나라가 실제로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가끔 할 앞에 나타나는 우주피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만이 공화국의 실재를 짐작케 한다. 할은 결국, 소설 속에서 그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가운데, 권총 자살한다. 그런데 그는 어젯밤에는 아내 요르기타와 사랑을 나눴고, 오늘은 자신이 머물던 호텔에서 100㎞ 떨어진 마을에서 수십 년 후 할머니가 된 미래의 요르기타를 만나고 돌아온 길이다. 소설은 사건과 시간의 흐름이 뫼비우스 띠처럼 얽힌 형국이다.

소설은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그중 한 가지 독법은 사람들 간의 소통이 막혀 있는 현실 세계, 리투아니아에 대하여 공화국을 소통과 연대가 가능한 이상향으로 이해하는 방법이다. 그럴 때 공화국은 ‘우주’의 ‘평화(피스)’가 가능한 곳이 될 것이다.

서사와 묘사에 주력하는 정통 소설에 싫증 난 독자라면 소설을 읽어나가며 큰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분들께 ‘강추’하고 싶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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