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생활문화를 수출한다]上.전통먹거리…외국인 입맛 맞춰 '현대적 요리'개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IMF한파는 우리에게 또다른 세계화의 길을 찾도록 요구한다.

해외에 나가서 돈을 쓰며 견문을 넓히는 세계화가 아닌 우리의 것으로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세계화가 필요한 시점. 거창한 신개발품만이 수출품목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식.주등 우리 고유의 생활문화로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

지난해 우리 나라를 찾은 외국인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사간 물건은 무엇이었을까? 한국관광공사가 3천3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의류 (41.4%)에 이어 2.3위를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김치 (32.9%) 와 식료품류 (32.8%) .인삼구입도 18.0%로 5위여서 '먹거리상품' 의 막강한 경쟁력을 보여줬다.

그뿐인가.

일본관광객들은 우리 나라에 오면 웬만해서는 일식집에 가는 법이 없다.

불고기.갈비 등은 물론이고 요즘엔 한정식.곱창전골.각종 찌개류에서부터 남대문시장의 떡볶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한식을 맛보고 가길 원한다.

또 한정혜요리학원이나 라맘마꾸시나등 국내 유명 요리학원에는 일본 등에서 원정오는 한국요리 수강생들이 끊이질 않는다.

그만큼 우리 농수산물과 우리 기술만으로 만들 수 있는 전통음식.전통식품들이야말로 IMF시대에 딱 알맞은 외화벌이 품목인 셈. 이렇게 전통 먹거리들이 지닌 상품가치가 높아지면서 최근 해외시장개척을 위한 다양한 움직임들이 보이고 있다.

우선 우리 농수산물의 가공식품업계가 기지개를 펴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를 통해 지난 92년에 본격적으로 국제식품박람회에 참가하기 시작한 전통가공식품업체들은 수출계약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는 상태. 아직은 영세업체들이 대부분이어서 97년 도쿄 (東京).홍콩.오사카 (大阪) 등에서 열린 식품박람회와 해외 특판행사에서 체결한 계약실적은 1억6천4백만달러 정도에 불과하지만 전망은 밝은 편이다.

한국식품개발연구원의 정상원 (鄭相元) 부원장은 "한과와 죽.삼계탕.술종류 등은 가능성이 있는 품목" 이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공정한 상거래와 소수 전략품목의 육성이 중요하다" 고 지적한다.

또 우리 음식의 패스트푸드화도 진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4월 용인에버랜드에 국내1호 점을 연 아시아음식전문패스트푸드점 '비지비 (Busy Bee)' 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국프랜차이즈. 미국내 7개 체인점의 취급음식엔 불고기.갈비 등 한식메뉴도 포함돼 있는데 최근엔 다양한 소스들을 소량상품화해 일반판매도 시작했다.

비지비의 유분자 (柳汾子) 사장은 "특히 고추장을 기본으로 한 핫 스파이시소스와 불고기소스 등은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아주 좋다" 고 말한다.

제일제당에서도 지난해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과 한림전문대전통조리과 한복진 교수에게 한국음식의 패스트푸드화 작업을 의뢰, 메뉴선정 및 표준조리법제작까지 마쳤다.

앞으로 따로 브랜드화해 세계시장에도 내놓는다는 목표. 국내 외식 업체들의 해외진출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예전의 해외 한식당들이 대개 한국인관광객들이나 현지 한국인 중심이었던데 비해 요즘 새로 문을 열고 있는 한식당들은 현지인 상류층고객을 주대상으로 한 대형고급식당이라는 것이 특징. 지난 91년9월에 중국베이징 (北京)에 1호 점을 연 이래 중국내 5개 지역에 지점을 두고 있는 '서라벌' 의 경우 중국에 한식당 '붐' 을 일으키며 1년 매출액이 80억원에 이르고 있다.

논현동에 본사를 둔 한우리 외식 사업의 홍콩지점도 96년 20억원 정도이던 매출액이 97년엔 40억원에 육박하는 등 신장세인데 현지인 고객이 80%안팎이라고. (주) 진로나 두산백화에선 중국 등지에 한식당을 열고 자사 주류의 판매기지로도 활용하고 있으며 코오롱상사 (주) 도 지난 12월에 중국베이징에 삼계탕전문점 '가영사복' 을 열었다.

삼계탕이 중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 것으로 보고 2천년경엔 가맹점을 5백여 개로 늘린다는 계획. 하지만 우리 음식의 세계화를 위해선 아직도 고려해야할 점이 많다.

라맘마꾸시나 최경숙 (崔敬淑) 원장은 "먼저 외국인들의 미각을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한국요리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고 강조한다.

전통 맛만 고집하지 말고 현대적.지역적 감각으로 변화시켜 일단 우리 것에 입맛을 들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소스류나 전통음식의 공산품화를 위해선 맛의 표준화가 선행돼야 할 부분. 또 외식 업체 해외진출의 경우 식당을 담보로 한 금융지원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한국음식의 고유한 맛에 대한 효과적인 홍보활동. 문화체육부에서도 지난해 11월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10개 상징의 하나로 김치와 불고기를 선정하고 홍보에 나서긴 했지만 아직 한국음식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한국식품개발연구원의 鄭부원장은 "관광산업과 전통 먹거리의 연대가 중요하다" 고 강조하고, 음식축제 등의 다양한 관광상품개발과 이름뿐인 국내 향토음식점들을 특화시키는 정책등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김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