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 남편 마음 다스리기…따뜻한 내조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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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수원에 사는 주부 김모 (43) 씨는 지난달 남편이 17년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당한후 '마음 다스리기' 가 얼마나 힘든지 절실히 깨닫고 있다.

회사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실직을 어느정도 각오는 했었지만 평생을 회사밖에 모르고 살아왔던 '일벌레' 남편이 하루종일 집안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있자면 '앞으로 어떻게 사나'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진다는 것. "주변사람에게 알리기가 창피해 전화받기도 두렵다" 는 김씨는 "내가 이러면 남편이 더 힘들어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풀기가 어렵다" 고 하소연한다.

게다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조차 "성실한 아버지도 이렇게 회사에서 쫓겨났는데 과연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살기만 하면 잘 살게 되는것 맞냐" 며 따지고 들때면 더욱 난감한 형편이 된다.

부도기업이 속출하고 구조조정 바람으로 대량감원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이렇게 실직한 남편 위로하랴, 경제적 어려움 해결하랴, 자녀 가치관 바르게 잡아주랴 이중삼중으로 고심하는 주부들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여성개발원 변화순 가족실장은 "실업은 일종의 사회현상일뿐 개인의 무능력과는 상관없다는 것을 가족들이 인식하고 가장이 새로운 일을 빨리 시작할수 있도록 편안한 재충전의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고 말한다.

한번 직장을 잡으면 평생직장으로 보장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것. 따라서 실직 이후 일정기간의 '실업자 생활' 이 일반화되는 시대가 곧 오게 되므로 실직을 창피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에게도 현재 경제상황을 정확히 말하고 한번 실직이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또 아내가 자신을 부끄러워한다는 사실만큼 남편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없는 만큼 남편이 실직했다는 사실을 친정식구나 친구등 주변사람에게 숨기지 말라는 것이 가족문제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가족들이 살아가면서 실직을 누구나 겪을수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면서 공동운명체로서 서로 위로하고 힘을 북돋워 주기 위해서는 '따뜻한 대화' 가 필수적이다.

'한국남성의 전화' 이옥 소장은 "하루 10여통씩 실직한 남성들의 상담전화가 걸려오는데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냥 털어놓기만 해도 편안해진다고 말한다" 며 "이런 허심탄회한 대화는 부부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고 말했다.

이소장은 아내가▶그동안의 남편 공로를 인정하고▶상실감이나 배반감을 공감하며▶각종 인쇄.방송매체나 인맥을 동원해 재취업이나 창업 정보를 얻어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실질적인 대화를 나누라고 조언한다.

이런 솔직한 대화는 실직이 빚는 제2의 가정문제 예방책이 되기도 한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내가 부업을 하게 되면서 육체적으로 피곤한 아내는 남편에게 쉽게 짜증을 내고 늦어지는 아내의 귀가에 남편역시 예민하게 반응하다 보면 부부관계에 금이 가는 경우가 많은만큼 서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쌓아야 '흔들리는 가정' 을 막을수 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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