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총수들 연말연시 위기 돌파 구상 '정중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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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중동 (靜中動)' . 재계 총수들의 올 연말연시가 여느 해와는 다르다.

해외나 지방출장이 없어 겉보기에 조용해 보이지만 안으로는 '피말리는' 고민속에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예전엔 볼 수 없었던 자금난, 갈피를 못잡은 새해 사업계획, 구조조정 압박 등 회사 사활이 걸린 일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정몽구 (鄭夢九) 회장은 요즘 오전6시40분이면 서울계동 사옥에 출근해 수출상황부터 챙긴다.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수출밖에 없다는 생각속에 이달들어서만도 그룹 경제위기극복 결의대회 (8일) , 사장단 수출확대전략회의 (15일) , 그룹운영위원회 (22일) 등을 잇따라 열었다.

사장들에게도 "직접 뛰어다니며 수출을 늘려라" 고 주문하고 있다.

구본무 (具本茂) LG그룹 회장은 성북동 구자경 (具滋暻) 명예회장 자택에서 신정을 쇤 뒤 한남동 자택에서 연휴를 지낼 계획이다.

연휴기간중의 화두 (話頭) 는 그룹의 사업구조조정. 具회장은 올해초 창업 50주년을 맞아 발표한 '선택과 집중' 이란 전략이 그동안의 여건변화로 재정리가 불가피해졌다고 보고 고심을 거듭할 것이란 게 그룹 관계자의 전언이다.

김우중 (金宇中) 대우그룹 회장의 올 연말연시는 외국투자가들을 만나고 해외사업을 점검하는 것이 전부다.

24일 출국한 金회장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씨티은행 등 금융계 관계자들을 만난 뒤 내년초 미국 월가를 방문해 외국투자가들과 만날 예정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겸하고 있는 최종현 (崔鍾賢) 선경그룹 회장도 연말연시가 바쁘기는 마찬가지. 崔회장은 24일 전경련 회장 자격으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를 만난데 이어 29일 선경건설 멕시코 정유플랜트 보고를 받고 30일엔 사장단회의를 주재한다.

이건희 (李健熙) 삼성회장은 한남동 자택에서 연말연시를 보낼 예정이다.

李회장은 요즘 레스터 서로의 '자본주의의 미래' 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은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세계를 평정하면서 앞으론 이념 대신 인적 자본과 기술경쟁력이 국가나 기업의 사활을 가를 것임을 강조한 책이다.

그런가 하면 박정구 (朴定求) 금호그룹 회장은 일요일인 21일에도 출근, 연말 임원인사를 매듭짓기 위해 사장들을 비상연락망으로 찾았다.

금호 비서실 관계자는 "평일에는 일상적인 경영사항들을 점검하고 외부 손님을 만나거나 각종 회의를 주재하는 데에도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주요그룹 회장들의 올 연말연시는 이미 휴일이 아니다.

누구보다 고민스럽고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고합그룹 장치혁 (張致赫) 회장은 매년초 가족들과 일본에서 휴가를 보냈으나 이번에는 국내에서 새해 사업을 점검하며 보낼 예정이다.

이밖에 한진 조중훈 (趙重勳) 회장.한화 김승연 (金昇淵) 회장.동부 김준기 (金俊起) 회장.두산 박용오 (朴容旿) 회장 등도 신정연휴를 자택에서 보내며 새해 경영구상을 가다듬을 계획이다.

민병관·고윤희·이원호·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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