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 키워드로 읽는 과학책’ ② 에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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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 망원경 발명 400년, 다윈 탄생 200년, 과학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남다른 2009년입니다. 근대 과학혁명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중앙일보와 ‘문지문화원 사이’는 과학 교양의 대중화를 위해 ‘10대 키워드로 읽는 과학책’시리즈를 매달 연재합니다. 편집자

우리 모두는 석유 중독에 빠져있다. 석유를 입고, 먹고, 타고, 두르고 산다. 대롱으로 빨듯이 지하에서 뽑아낸 석유는 거대한 유조선에 담겨 세계 각지로 간다. 원유 1배럴(159리터)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어떤 걸까. ▶중형 승용차로 1주일 정도 신도시에서 도심까지 출퇴근할 수 있는 휘발유 ▶트럭으로 천안에서 서울 농수산물 시장에 배추 수 천 포기를 옮길 수 있는 경유 ▶10㎏짜리 액화가스 10통 ▶4리터의 아스팔트 ▶몇 개의 콘돔 ▶CD ▶나일론 스타킹 ▶씹는 껌 등이 원유 1배럴에서 나온다. 석유를 중심으로 모든 경제 시스템이 돌아가고, 그것에 맞춰 새로운 것들이 등장한다. 석유를 점점 더 쓸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다. 석유 수명은 앞으로 50년 … 눈돌릴 곳은 태양 뿐

사하라 사막에 가로세로 700㎞의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하면 현재 인류가 1년 간 쓰는 에너지를 다 생산해 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50년 안에 끝장나는 석유경제=석유만 무한정 있다면 지구의 온도가 조금 올라가는 것 정도야 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석유 공급이 끊겨 참담한 금단 현상을 경험해야 할 시기가 멀지 않았다. 세계 석유 생산의 정점, 즉 오일 피크(oil peak)가 2010~2020년에 온다. 이후엔 석유 생산량이 점차 감소해 향후 50년 안에 석유경제는 끝장이 난다.

공연한 협박이라고? 30년 전에도 곧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고들 하지 않았던가? 아직도 거대 석유회사 주가 관리자들은 오일 피크가 빨라야 2050년에야 온다고 주장한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런 낙관론을 배반하고 있다. 30년 전의 경고가 양치기 소년의 외침이 된 이유는 탐사기술의 발달 때문이다. 1942년에 6500억 배럴이라던 궁극석유매장량 추정치가 지금은 2조 배럴이 조금 넘는다. 앞으로도 기술이 더 발달하면 숨겨진 유전을 더 찾아낼 수 있을까? 하지만 이미 위성과 레이더를 비롯한 온갖 첨단 장비를 동원해 조사하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게 문제다. 1990년대 이후 발견된 유전의 평균 매장량은 5000만 배럴에 불과하다. 총 매장량의 절반인 1조 배럴은 지난 150년 동안 이미 써버렸다. 지금도 매일 1억 배럴 씩 석유를 퍼내고 있다. 궁극매장량의 절반을 써 버렸을 때 달하는 오일피크가 가깝다. 갈 길이 먼 무더운 사막에 있건만 마실 물은 절반 밖에 남지 않은 꼴이다.

석유·석탄 등 화석 에너지는 사실 태양이 준 선물이다. 당장 쓰기엔 에너지 효율이 높지만, 그 생성 과정을 보자면 수천만년간 ‘숙성’돼야 하는 물질이니 대단히 효율이 낮은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사진은 프랑스의 해외 자치주 가운데 하나인 레위니옹 섬의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 집광판 위로 태양이 빛나고 있다. [중앙포토]

◆대안은 태양에너지=금단현상에 몸부림치다 죽지 않으려면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동차 연비를 올리는 것 정도로는 가당찮다. 석유를 대신할 에너지원을 찾아야 한다. 한때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소인 수소에 희망을 걸기도 했다. 수소핵융합 발전이 인류에게 영원불멸의 에너지를 제공할 것이라는 꿈이다. 제법 세월이 지났지만 실현은 요원하다. 핵융합으로 만든 인공태양을 고작 3초 정도 현실에 존재하게 만드는 것, 그것도 현재 예측에 따르면 2030년이나 돼야 가능하다.

눈을 돌릴 곳은 태양 밖에 없다. 태양은 인류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의 1만 5000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지구에 보낸다. 햇빛이 강한 사하라 사막에는 1년 동안 1㎡당 2100㎾h의 에너지가 태양에서 내려온다. 사하라 사막에선 남한 절반 크기의 면적에 전세계 인류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가 내리쬐는 셈이다. 지금 기술로는 10%만 에너지로 바꿀 수 있으니 가로세로 700㎞ 넓이면 세계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다.

남한의 경우 1㎡당 연간 1300㎾h의 에너지가 떨어지니 석유로 환산하면 800억 배럴에 해당한다. 우리가 1년에 사용하는 석유의 10배다. 기술도 있고 에너지도 충분하다. 이제 남은 것은 결단뿐이다. 

오동훈 한국과학기술 기획평가원 연구위원

■ 추천도서

『수소 혁명』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진수 옮김, 민음사, 361쪽, 1만4000원)

석유에 관한 과학·사회·정치적 요소들을 균형 있게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부터 시작하면 좋다. 석유 매장량이 줄어들어 발생하는 문제뿐 아니라 석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지리·경제적 분쟁의 깊은 역사까지 일목요연하게 다루고 있다. 석유를 비롯한 탄화수소 이후의 대안으로 수소를 제안하지만 수소를 얻고 실생활에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분배까지 하려면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에너지 디자인』 (바츨라프 스밀 지음, 허은녕 외 옮김, 창비, 543쪽, 3만원)

에너지 문제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얻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는 책. 특히 화석에너지 이외의 대안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 석유에서 어떤 에너지로 옮겨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여러 갈래의 사회상을 미리 그려볼 수 있다. 바이오매스(biomass)에서 석유를 비롯한 화석 연료로 갈아탄 것은 고작 150년 전. 인류가 다시 어떤 에너지원으로 갈아타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과 풍경은 달라진다.

『다시 태양의 시대로』 (이필렬 지음, 양문, 227쪽, 1만원)

석유 중독 이전에 사람들은 햇빛·나무·물·바람 같은 자원을 활용했다. 태양으로부터 온 사라지지 않는 에너지다. 지은이는 석유중독에서 빠져나와 제2의 태양에너지 시대로 재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 낙관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재생가능한 에너지가 계속 공급된다고 무작정 쓰다보면 예기치 않은 문제, 이를테면 수소를 너무 많이 쓸 경우 대량으로 나온 수증기 탓에 지구 물 순환에 이상이 오는 난관에 봉착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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