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석유 중독에 빠져있다. 석유를 입고, 먹고, 타고, 두르고 산다. 대롱으로 빨듯이 지하에서 뽑아낸 석유는 거대한 유조선에 담겨 세계 각지로 간다. 원유 1배럴(159리터)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어떤 걸까. ▶중형 승용차로 1주일 정도 신도시에서 도심까지 출퇴근할 수 있는 휘발유 ▶트럭으로 천안에서 서울 농수산물 시장에 배추 수 천 포기를 옮길 수 있는 경유 ▶10㎏짜리 액화가스 10통 ▶4리터의 아스팔트 ▶몇 개의 콘돔 ▶CD ▶나일론 스타킹 ▶씹는 껌 등이 원유 1배럴에서 나온다. 석유를 중심으로 모든 경제 시스템이 돌아가고, 그것에 맞춰 새로운 것들이 등장한다. 석유를 점점 더 쓸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다. 석유 수명은 앞으로 50년 … 눈돌릴 곳은 태양 뿐
사하라 사막에 가로세로 700㎞의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하면 현재 인류가 1년 간 쓰는 에너지를 다 생산해 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공연한 협박이라고? 30년 전에도 곧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고들 하지 않았던가? 아직도 거대 석유회사 주가 관리자들은 오일 피크가 빨라야 2050년에야 온다고 주장한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런 낙관론을 배반하고 있다. 30년 전의 경고가 양치기 소년의 외침이 된 이유는 탐사기술의 발달 때문이다. 1942년에 6500억 배럴이라던 궁극석유매장량 추정치가 지금은 2조 배럴이 조금 넘는다. 앞으로도 기술이 더 발달하면 숨겨진 유전을 더 찾아낼 수 있을까? 하지만 이미 위성과 레이더를 비롯한 온갖 첨단 장비를 동원해 조사하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게 문제다. 1990년대 이후 발견된 유전의 평균 매장량은 5000만 배럴에 불과하다. 총 매장량의 절반인 1조 배럴은 지난 150년 동안 이미 써버렸다. 지금도 매일 1억 배럴 씩 석유를 퍼내고 있다. 궁극매장량의 절반을 써 버렸을 때 달하는 오일피크가 가깝다. 갈 길이 먼 무더운 사막에 있건만 마실 물은 절반 밖에 남지 않은 꼴이다.
석유·석탄 등 화석 에너지는 사실 태양이 준 선물이다. 당장 쓰기엔 에너지 효율이 높지만, 그 생성 과정을 보자면 수천만년간 ‘숙성’돼야 하는 물질이니 대단히 효율이 낮은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사진은 프랑스의 해외 자치주 가운데 하나인 레위니옹 섬의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 집광판 위로 태양이 빛나고 있다. [중앙포토]
눈을 돌릴 곳은 태양 밖에 없다. 태양은 인류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의 1만 5000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지구에 보낸다. 햇빛이 강한 사하라 사막에는 1년 동안 1㎡당 2100㎾h의 에너지가 태양에서 내려온다. 사하라 사막에선 남한 절반 크기의 면적에 전세계 인류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가 내리쬐는 셈이다. 지금 기술로는 10%만 에너지로 바꿀 수 있으니 가로세로 700㎞ 넓이면 세계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다.
남한의 경우 1㎡당 연간 1300㎾h의 에너지가 떨어지니 석유로 환산하면 800억 배럴에 해당한다. 우리가 1년에 사용하는 석유의 10배다. 기술도 있고 에너지도 충분하다. 이제 남은 것은 결단뿐이다.
오동훈 한국과학기술 기획평가원 연구위원
■ 추천도서
『수소 혁명』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진수 옮김, 민음사, 361쪽, 1만4000원)
『에너지 디자인』 (바츨라프 스밀 지음, 허은녕 외 옮김, 창비, 543쪽, 3만원)
『다시 태양의 시대로』 (이필렬 지음, 양문, 227쪽,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