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대란' 큰 고비는 넘겼다…각국 정부·금융 "한국 살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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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의 외환위기에 그동안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던 국제사회가 24일 자정 전격 발표된 국제통화기금 (IMF) 과 미.일 등 13개 주요 선진국의 1백억달러 조기지원 소식에 힘입어 '한국 살리기'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미.일 등 각국 정부는 이날 자금지원 발표와 함께 자국 금융기관들에 대해서도 한국의 금융위기 수습을 위해 앞장서 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금융기관에 대한 대출금을 회수하거나 한국물 (物) 을 외면했던 각국 금융기관들의 태도에도 긍정적 변화가 일고 있다.

미 뉴욕연방은행은 이날 발표 직후인 24일 오후 (현지시간) J P 모건 등 뉴욕지역의 6개 상업은행 대표들과 함께 한국의 금융상황을 논의했다.

이들은 이번 조기지원 결정에 환영의사를 밝히고 "이 시점에서 한국이 공공.민간부문에서 적절한 외화유동성을 유지토록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며 "한국에 지원할 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금융기관들이 다음주초 다시 회의를 갖기로 했다" 고 밝혔다.

이에 따라 뉴욕 월가에서는 코리아펀드 등 한국물 가격이 다시 오름세로 돌아서고 한때 연 14~14.5%대까지 올랐던 산은채 수익률도 하루만에 1.5~2%포인트 떨어졌다.

현재 80억달러를 운용하는 오펜하이머 스트러티직 인컴 펀드의 한 관계자는 “위험성이 없지 않지만 산은이 지급불능에 빠지지 않는다는 쪽에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고 밝혔다.

또 뉴욕에 진출한 영국계 은행들은 "영국 중앙은행이 한국쪽으로 나간 대출자금에 대해 무리한 상환요구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고 밝혔다.

한국 외채의 30% 가량을 빌려준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 금융기관들도 25일 도쿄미쓰비시 (東京三菱) 은행과 농림중앙금고 등 주요 거래선들이 더이상 스와프 한도 축소나 자금상환 독촉을 하지 않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장성의 핵심관계자도 이날 "한국의 국가부도 사태는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 이라고 확인했다.

한편 한국의 금융위기가 국가부도사태로 악화될 것을 우려했던 외국 언론들도 이날 일제히 "한국이 최악의 상황을 넘겼다" 며 1백억달러 조기지원이 상황을 반전시킬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임창열 (林昌烈)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과 IMF는 "IMF가 오는 30일 20억달러, 선진 13개국이 내년초 80억달러를 당초 일정보다 앞당겨 조기 지원키로 했다" 고 동시에 발표했다.

林부총리는 "현재 가용 외환보유고가 87억달러이지만 조기지원 등에 힘입어 내년 1월에 1백50억달러, 2월 1백70억달러로 늘어날 것" 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조기지원을 받는 대신 IMF의 추가요구를 받아들여 ▶오는 30일부터 외국인주식투자한도를 종목당 50%에서 55%로 확대하고 ▶올해말까지 채권시장의 종목당한도 (30%) 도 폐지하며 ▶내년 3월부터 외국은행.증권사 현지법인 설립을 허용해 주기로 했다.

또 고용문제와 관련, 내년 1월에 경제주체들의 고통분담을 담은 합의문을 발표하고, 2월에는 고용보험제도 확충계획 발표와 근로자파견제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뉴욕·도쿄 = 김동균·이철호 특파원, 고현곤·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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