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첫날 행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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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9일 오전8시. 날이 훤하게 밝은 다음에서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일산자택 현관문을 열었다.

전날 오후10시쯤 귀가한 뒤 자택 담장 앞에서 "김대중대통령" 을 연호하며 날밤을 지샌 3백여명 지지자들의 간곡한 요청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였다.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전화와 조홍래 (趙洪來) 정무수석의 축하방문도 받았다.

그 후 감색 트렌치코트 차림을 한 그는 옥색 한복을 차려입은 부인 이희호 (李姬鎬) 여사와 함께 환한 미소를 머금은채 계단 위에서 뜰안에 포진한 1백여명의 취재진과 그를 향한 지지자들에게 말문을 열었다.

"국민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 일성을 발하는 그의 표정은 그동안 가슴 깊숙이 묻어두었던 뜨거운 격정과 기쁨이 한꺼번에 밀려오는듯 했다.

한켠엔 비장함도 엿보였다.

그는 "국민여러분의 아낌없는 지원을 부탁한다" 며 "모든 능력과 성심을 다해 봉사하겠다" 고 다짐했다.

심야에 자택을 찾은 조세형 (趙世衡) 총재권한대행, 정동영 (鄭東泳) 대변인 등과 스케줄.기자회견문 등을 가다듬은 것을 제외하면 정국구상에 골몰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오전3시에는 김영삼대통령으로부터 당선축하 인사전화를 받았다.

오전 7시쯤엔 이회창 (李會昌).이인제 (李仁濟)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와 협조의사를 밝힌데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자택을 나선 그는 쉴새없는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국회에 도착, 본관 계단아래에서 그를 기다리던 당직자와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하다" 는 말을 반복했다.

"50년만에 이뤄낸 정권교체로 우리는 새역사를 쓰게 됐다" 며 민주주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임을 거듭 약속했다.

이어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당선기자회견을 한 뒤 바로 국립묘지로 향했다.

자민련의 김종필 (金鍾泌) 명예총재, 박태준 (朴泰俊) 총재 등 50여명의 국민회의.자민련 당직자들과 함께 충혼탑에서 분향한뒤 이승만 (李承晩).박정희 (朴正熙) 전대통령의 묘역을 찾았다.

朴총재가 앞 열에 서지 않으려 하자 손을 뻗어 앞열로 인도하는 등 대선 승리에 큰 힘이 돼준 두 노정객을 예우했다.

방명록에 "백세유방 (百世流芳.꽃다운 이름이 후세에 오래 전한다)" 이라는 글을 남긴뒤 국회 국민회의 총재실로 돌아와 대기하던 김광석 (金光石) 청와대경호실장에게 이날부터 시작된 청와대 경호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는 이어 대통령당선자로서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일본 총리와 잇따라 통화했다.

그는 당선 축하인사에 대해 "감사하다" 고 답한뒤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금융과 대북문제에 대한 협조를 거듭 부탁했다.

국회 귀빈식당에서 국민회의.자민련 당직자들과 점심을 나누는 자리에서 김충조 (金忠兆) 사무총장으로부터 '당선증' 을 건네받자 잠시 환호성이 터졌다.

이어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미국대사의 예방을 받고 IMF 구제금융에 대해 토의한뒤 일산자택으로 돌아가 김종필명예총재.박태준총재와 함께 만찬을 갖는 것으로 대통령당선자로서의 첫 하루일과를 마무리했다.

신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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