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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국제경제연구소 버그스텐소장 '아시아 금융위기' 연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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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아시아 경제에 관해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프레드 버그스텐 국제경제연구소 (IIE) 소장이 지난 16일 美 워싱턴에서 세계은행이 주최한 '아시아 금융위기에 관한 토론회' 에 참석, "아시아 경제는 위기를 극복하고 계속 발전해 나갈 것" 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그는 위기 극복을 위해 아시아 각국이 현재의 잘못된 금융관행을 개혁하는 근본적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본지는 이날 버그스텐 소장이 발표한 내용과 참석자들과의 질의 응답을 긴급 입수해 소개한다.

최근 아시아 금융위기와 관련해 크게 3가지 범주의 질문들이 제기될 수 있다.

이는 ▶이번 위기의 의미는 무엇이며 극복 방안은 무엇인가 ▶중기적으로 이번 위기 때문에 아시아 경제의 발전이 지체되고 상당 기간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할 것인가 ▶아시아식 경제모델이 다시 활력을 회복할 것인가로 요약된다.

이번 위기는 국제금융시장이 동남아국가들의 대외적 신용상태에 의구심을 가지면서 시작됐다.

특히 이들의 금융체계가 취약하고 가지고 있는 돈과 외채를 갚아야 할 시기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위기는 확대됐다.

지난달 한국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아시아 위기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한국은 높은 경제성장률에다 정부재정과 통화정책이 견실해 거시경제지표는 상대적으로 좋았다.

경상수지 적자만이 문제였다.

전 세계적인 금융불안이 겹치면서 한국 금융시장의 취약성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사태는 악화됐다.

한국 원화의 평가절하는 불과 몇주동안 다른 동남아국가들의 평가절하 수준을 넘어버렸다.

이는 이 지역 다른 모든 나라에 압박으로 작용했다.

아시아 지역의 통화가치는 최저치 기록을 경신했다.

현재 가장 시급한 정책은 아시아 각국의 통화가치가 연쇄적으로 하락하는 것을 막고 한 나라의 통화가치 하락이 다른 나라에 압박을 주는 상호작용을 피하는 것이다.

만일 일본 엔화가 현재 1백30엔대에서 1백50엔대로 폭락하든지, 원화가 다시 하락하든지, 대만이 평가절하를 실시하든지, 홍콩이 페그제를 포기하고 중국도 위안화의 평가절하에 나서든지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

이 경우 통화가치의 하락은 지난 몇주간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일어날 것이고 세계 경제는 전후 가장 큰 위기를 맞을 것이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종전의 금융.외환위기와 분명히 구분된다.

현재 아시아 위기는 전통적인 거시경제적 문제들이 아니라 대부분 구조적 측면의 미시경제적 문제들에서 파생된 것이다.

단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태국.인도네시아 등 IMF 지원프로그램에 동의한 국가들이 그 요구조건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이다.

이들이 요구조건을 제대로 이행할 것인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들 국가는 철저한 개혁의지의 재천명과 지원조건의 성실한 이행을 통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 경제회복의 첫번째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다.

또 외부로부터의 지원이 적절한 시기에 제공돼야 한다.

외부 지원은 이들 국가로 하여금 금융시장의 불안을 안정시키고 단기채무의 상환을 용이하게 해 통화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특히 아시아 위기를 구제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일본의 경우 특별한 정책이 필요하다.

얼마전 일본은 아시아 위기의 추가 발생에 대비해 1천억달러의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은 차라리 그 정도의 돈을 한국등 아시아 국가로부터의 수입을 늘리는데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무역수지 적자로 허덕이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을 돕는 길은 일본이 더 많은 수입을 해주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는 강하지만 내년 무역적자가 3천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의회와 정부 모두 무역자유화 조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만큼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다.

물론 일본 경제도 최근 5년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은 엄청나게 낮은 이자율을 유지하면서 5천억달러의 돈을 쏟아부어 경제 구조를 조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의 문제는 취약한 금융구조가 경제전체를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현재 금융관행의 근본적 변화가 없으면 상황을 금방 개선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 정부가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 문제를 적절히 해결하고 회생 불가능한 금융기관들을 과감히 정리하는 등 금융구조의 근본적 개혁에 성공한다면 일본 경제는 다시 본궤도에 오를 것이다.

이 지역의 또다른 중요한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최근 아시아 위기속에서도 낮은 이자율을 유지하고 인플레 억제에 성공하는 등 비교적 적절히 대응해왔다.

그러나 중국도 주변국과 마찬가지로 평가절하의 압력을 받고 있으므로 통화가치의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지적들이 단기적 처방이라면 장기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

마닐라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 (APEC) 재무장관회담과 밴쿠버 APEC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금융시스템 개선을 위한 새로운 틀은 국제 통화시스템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태국.한국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IMF는 위기발생을 예측해 경고했다.

그러나 두 나라는 이 경고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으며 양국으로 하여금 문제가 위기로 확대되기 전에 개혁압력을 넣을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IMF는 강제력이 없다.

그저 주변국들의 따가운 눈총만이 문제발생 국가에 대한 압력이 되고 있을 뿐이다.

아시아의 경우 주변국들이 서로의 경제상태를 감시해 미래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체제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미래의 위기를 전망할 수 있는 지역감시체계를 마련키로 한 마닐라 합의는 매우 중요하다.

APEC국가들은 이같은 감시체계를 이 지역의 무역자유화와 연계시키려 하고 있다.

그들은 2020년까지 회원국간의 무역.투자를 완전 자유화하는 역사상 가장 야심찬 무역개방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시아 경제의 미래는 매우 낙관적이다.

이번 위기가 아시아 전역에서 정책 개혁과 시장 자유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구조적 문제는 매우 뿌리깊은 것이기 때문에 위기극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며 과거와의 결정적 단절이 있어야 한다.

앞서 지적한 단기 과제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실행하지 않으면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혼란이 올 것이다.

정리 = 국제경제팀

<약력〉>

▶41년 4월23일 뉴욕 브루클린 출생 (56)

▶61년 미주리주 센트럴 메소디스트 컬리지 졸업

▶69년 플래처 법률외교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69년 미 국가안보위원회 국제경제담당 보좌역

▶72년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73년 월드워치 연구소 연구원

▶77년 미 재무부 국제문제담당 차관보

▶81년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

▶81년 미 국제경제연구소 소장

▶91년 미 의회 경쟁력정책위원회 의장

▶93년 APEC저명인사그룹 회장〈저서〉

▶APEC은 어디로 가는가 (97년)

▶세계 경제리더십과 G7 국가들 (96년)

▶미.일 경제 분쟁 (93년)

▶태평양 역학관계와 국제경제 시스템 (93년) ▶세계경제속의 미국 (88년)

▶80년대의 무역정책 (84년)

▶달러의 딜레마 (76년)

▶세계정치학과 국제경제학 (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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