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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 재판대 오른 후세인] "난 이라크 대통령…이건 연극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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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일 시작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첫 재판은 30분 만에 끝났다. 후세인은 혐의사실을 담은 법률서류에 대한 서명을 거부했다. 이날 재판은 바그다드 중심부의 안전지대(그린존) 안에 설치된 특별재판소에서 진행됐다. 재판 장면은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야에 의해 촬영된 뒤 미군 측의 검열을 거쳐 재판 종료 후 전 세계에 방송됐다.

◇법정 출두=후세인은 1일 오후 4시쯤(현지시간) 삼엄한 경호 속에 헬기를 타고 특별재판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체포된 뒤 6개월 만이다.

재판소에 도착했을 때는 수갑을 차고 있었지만 법정에 들어설 때는 수갑을 벗은 상태였다. 모습은 말끔했다. 체포 당시의 덥수룩한 턱수염과 콧수염은 단정하게 다듬어졌다. 넥타이 없는 흰색 셔츠 위에 회색 양복 차림인 후세인은 다소 야위긴 했지만 건강해 보였다.

그는 재판 도중 노란색 종이에 간간이 메모했으며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한 아랍 전문가는 "아랍인들이 턱수염을 기른다는 것은 시련과 혼란의 의미"라며 "후세인이 턱수염을 면도하지 않은 것은 우울하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후세인은 재판관이 인정 신문에 앞서 성명을 묻자 두번에 걸쳐 명료한 목소리로 "나는 이라크 공화국의 대통령인 사담 후세인"이라고 말했다. 재판관이 "당신이 법정에 선 이유를 아느냐"고 묻자 후세인은 "나는 이라크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다. 따라서 나는 당신들의 법정에 설 이유가 없다. 이것은 연극이다. 진짜 범죄자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라며 재판 거부의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재판관은 "제네바 협약에 따라 피고의 대통령 신분은 박탈됐다"고 지적했다.

후세인은 곧이어 진행된 인정신문에서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사실확인을 요구받자 갑자기 흥분한 듯 손을 뾰족하게 오므려 앞으로 찌르는 자세를 취하며 "쿠웨이트 침공은 이라크를 쿠웨이트의 '개들'로부터 지키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런 비속어를 재판정에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후세인은 법률서류에 대한 내용을 통보한 뒤 서명을 요구하자 "변호사가 없는 상태에서는 서명할 수 없다. 칼라스(끝났다)"라며 고개를 돌렸다.

◇사형 논란=말리크 도한 알하산 이라크 법무장관은 지난달 30일 "후세인은 사형선고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도 최고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유럽은 사형에 반대다. 프랑스는 "어떤 경우에도 후세인에 대한 사형에는 반대"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측근도 "영국은 사형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장외 공방=후세인의 부인 사지다가 선임한 20명의 변호인단을 이끌고 있는 무하마드 알라쉬단은 "이라크의 현 사법부는 행정부와 동일하며 (삼권분립 측면에서) 비합법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셰이크 알자베르 알사바흐 쿠웨이트 총리는 "후세인이 쿠웨이트인에게 저지른 반인도적 범죄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범 기자

쿠르드족 독가스 학살 등 혐의
관련 문서만 30t … "연루 밝히는 게 핵심"

이라크 법정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에게 적용한 혐의는 크게 ▶이슬람 시아파.쿠르드족에 대한 반인륜적 학살▶주변국 침공▶화학무기 사용 등이다.

임시정부 특별 검찰은 후세인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30t 규모의 관련 문서를 미군에게서 넘겨받았다.

◇쿠르드족 독가스 학살=후세인은 1988년 2월 이란과의 8년 전쟁이 끝나자 비밀리에 암호명 '알 안팔'작전을 펼쳤다. 쿠르드족에 대한 인종청소와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의 아랍화가 목표였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 배후에서 이란을 지원했다는 이유도 달았다. 이라크군은 북부 할라브자 마을에 신경가스의 일종인 사린.청산가리 가스를 살포, 민간인 5000명이 숨지고 6만5000명이 장애인이 됐다.

쿠르드족에 따르면 이라크군이 그해 9월까지 계속 독가스를 살포해 주민 5만~10만명이 학살됐다. 이 작전을 지휘한 인물로 일명 '케미컬 알리'로 알려진 알리 하산 알마지드 사령관이 지목되고 있지만 특별검찰은 실질적 지시가 후세인에게서 나왔거나, 적어도 사건을 전후해 알마지드 장군의 보고를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BBC방송은 "방대한 규모의 자료를 확보했지만 후세인이 직접 관련됐음을 보여주는 문서는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바트당은 특별 승인된 잔혹행위일지라도 후세인의 서명 없이 할 수 있도록 운영돼 왔다"고 지적했다.

◇전쟁도발 책임=후세인 전 대통령은 80년 9월 이라크.이란 국경을 흐르는 샤트 알 아랍 수로 분쟁을 구실로 이란을 전격 침공했다. 후세인은 이 전쟁에서도 화학무기를 사용했다. 83년과 85년 이라크군은 두 차례에 걸쳐 겨자.신경작용제 등 생물.화학무기를 살포, 이란군 2만여명을 숨지게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후세인은 이 전쟁을 도발한 혐의를 받고 있다. 후세인은 또 90년 8월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다음해 2월 미.영 다국적군의 반격을 받자 철수하면서 쿠웨이트시티를 약탈하고 700여개 유정에 불을 질렀다. 당시 쿠웨이트인 600~1000여명도 실종됐다. 후세인은 이 기간 중 이스라엘에 스커드미사일 39기 발사를 명령해 민간인 두명을 숨지게 했다.

◇의문.실종사=91년 걸프전 이후 후세인은 남부 시아파의 민중봉기를 진압하면서 시아파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무차별 고문.처형을 일삼았다. 지금까지 이라크 전역에서 270여개의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으며 당시 학살된 시아파 주민은 3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봉기 당시 3만~6만명에 이르는 민간인이 병원과 가정.이슬람사원.거리에서 무차별 살해됐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후세인은 집단학살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용환 기자

측근 11명 함께 기소

살렘 찰라비 이라크 특별재판소장은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 인사 11명을 정식 기소했다. 다음은 그 11명의 약력이다.

▶아비드 하미드 알티크리티=후세인의 개인비서.국가안보보좌관 겸 경호실장으로 절대적 신임을 받았다. 지난해 6월 16일 체포.

▶알리 하산 알마지드=군 사령관으로 쿠르드족.시아파.쿠웨이트 주민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일명 '케미컬 알리'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21일 체포.

▶아지즈 살리흐 알누만=군 사령관으로 1991년 쿠웨이트 침공군을 지휘했다. 쿠웨이트 해방 후 이라크 남부에서 발생한 봉기 때 시아파 처형에 가담했다. 지난해 5월 22일 체포.

▶바르잔 이브라힘 하산 알티크리티= 후세인의 이복 형제로 대통령 보좌관을 지냈다. 일찍 체포돼 대량살상무기의 은닉장소를 누설할 것으로 기대됐다.지난해 4월 16일 체포.

▶카말 무스타파 압둘라 술탄 알티크리티=혁명수비대 서기관이자 후세인의 측근 중 측근. 지난해 5월 17일 체포.

▶무하마드 함자 알주바이디=전 부총리이자 고위 바트당원이었다. 지난해 4월 20일 체포.

▶사비르 아비드 알아지즈 알두리=고위 바트당원이었다. 지난해 4월 17일 체포.

▶술탄 하심 아흐마드 알탈=국방장관을 지냈고 후세인의 측근이었다. 지난해 9월 19일 체포.

▶타하 야신 라마단=부통령. 지난해 4월 20일 체포.

▶타리크 아지즈=부총리와 외무장관을 지냈다. 지난해 4월 25일 체포.

▶와트반 이브라힘 알티크리티=사담의 이복 형제로 보좌관이었고 1995년까지 내무장관을 지냈다. 죄수 고문.처형.추행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4월 13일 체포.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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