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전직 스파이를 연기한 줄리아 로버츠(左)와 클라이브 오웬.
‘더블 스파이’의 진용은 호화판이다. 천문학적 몸값을 받는 이유가 분명 있다는 생각이 드는 줄리아 로버츠, 적당한 바람기와 이를 보기좋게 포장한 깔끔한 매너로 ‘섹시 중년남’의 가능성을 다분히 보여주는 클라이브 오웬이 각각 미국 CIA와 영국 MI6 요원으로 등장한다. 각본과 연출은 ‘본 얼티메이텀’ 등 ‘본’시리즈의 각본을 썼으며 감독 데뷔작 ‘마이클 클레이튼’으로 호평받았던 토니 길로이다. 이 정도면 이름과 시놉시스 한 장만으로도 얼마든지 ‘묻지마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을 조건이다.
스파이끼리 서로의 정체를 몰랐던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2005)와 달리, 이들은 초반부터 서로를 너무 잘 안다. 물론 방심한 남자가 첫 만남에서 작업 걸다 보기 좋게 선제공격을 당하긴 했지만. 서로에게 홀딱 반한 이들은 스파이짓을 청산하고 크게 한탕해 잘 살아보기로 한다. 화장품 업계의 양대 라이벌 회사에 이중스파이와 연락원으로 침투한 두 남녀는 극비리에 진행되는 신제품 정보를 빼돌리기로 한다. 계획은 착착 진행되지만, 그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직업적 한계 탓에 서로를 100%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신’의 파생물은 두 남녀의 만남부터 범죄를 꾸미게 된 현재까지를 재구성하는 잦은 플래시백이다. 사랑하지만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인간 심리의 어쩔 수 없는 한계,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산업스파이 행각이 자아내는 긴박감 등이 플래쉬백과 플래쉬백 사이를 조밀하게 메운다. 알고 보면 그리 복잡할 것도 없는 스토리인 듯 하면서도 관객의 두뇌를 분주하게 회전시키는 잘 만든 오락영화다. 로마·두바이·런던·취리히·마이애미 등을 두루 훑는 로맨틱한 로케이션은 ‘세계를 간다’ 수준. 범죄물로서 파격적이라 할 밖에 없는 결말에 할리우드 관객들은 실망한 듯 싶지만 3월 개봉 당시 미국 평단은 이 영화의 ‘엣지 있음’에 찬사를 보냈다. 12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