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환율 변동폭 자유화 첫날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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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환율변동폭이 자유화된 첫날인 16일 은행 환전창구에는 환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달러를 팔려는 고객들이 몰려 온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매매기준율보다 2백43원이상 떨어진 달러당1천4백원에 거래가 시작되자 시중 은행들은 오전 10시15분이 되도록 적용 환율을 고시하지 못해 아침부터 환전을 위해 은행을 찾은 고객들이 30여분씩 기다리기도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장롱속 달러가 역시 많더라" 고 놀라워 하면서도 "달러를 팔라고 국민 감정에 호소하는 것보다 시장에 맡기는 것이 환율 안정에 효과적" 이라고 평가했다.

…소공동 조흥은행 지점을 찾은 한 40대 주부는 고시된 환율을 보고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다" 며 "집에 달러를 갖고 있는데 지금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 고 고민하는 모습.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에도 환전 고객이 평소의 2~3배 가량 몰렸다.

회사원 金모 (33) 씨는 "달러를 팔려는 사람이 많아 벌써 20분을 기다렸다" 고 말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오늘은 특히 만달러대의 거액을 파는 개인 고객이 많은 것이 특징" 이라고 말했다.

외화예금통장의 해약도 줄을 이었다.

한일은행 관계자는 "외화 예금을 빼내 달러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원화로 바꾸겠다는 고객이 많다" 면서 "이를 원화예금으로 다시 예치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고 말했다.

…환율변동폭이 완전히 폐지되기 전날인 15일 서울 강남의 모 시중은행 외환창구에서는 한 고객이 한꺼번에 무려 1백만달러를 원화 (약 15억원) 로 바꿔가 화제. 달러화가 가득 담긴 007가방을 들고 은행에 온 이 고객은 창구직원에게 "환율이 더 이상 오르지 않을 것같아 금고속에 보관해둔 달러화를 모두 꺼내왔다" 고 말했다는 후문. 또 서울강남 소재 은행 외환창구에는 16일에도 1만~10만달러의 뭉칫돈을 환전하는 고객이 상당수에 달해 실명제 실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외화를 현찰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

…지난 주말부터 이번주초까지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사상 최고수준을 기록하자 미국.일본 등 해외 한국 금융기관에는 환차익을 기대하는 교포들이 몰려들어 국내송금 러시를 이뤘다.

미국 뉴욕 상업은행 플러싱 지점의 경우 15일 (현지시간) 무려 3백50명의 교포가 한국 송금을 위해 몰려들어 객장이 하루종일 발디딜 틈이 없었다.

이들중 일부는 핸드폰을 이용, 다른 은행에 나가 있는 가족들과 연락하면서 "조금만 기다리면 송금차례가 돌아온다" 는 등 정보를 주고받아 대입 눈치작전을 방불케 했다.

일본의 경우도 지난 주말부터 교민.주재원들의 본국 송금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서울은행 도쿄지점은 환율이 최고조에 이른 지난 12일부터 송금 의뢰가 쏟아져 15일에는 평소보다 5~6배나 많은 55건 1억5천만엔 이상의 송금실적을 올렸으며, 16일에도 송금 러시가 계속되고 있다.

뉴욕 = 김동균.도쿄 = 김국진 특파원, 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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