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오페라 '아말과 밤에 찾아온 손님'…작지만 훈훈한 세밑 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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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작지만 훈훈한 세밑 무대 오페라 '아말과 밤에 찾아온 손님' '작은 것이 아름답다.

' 문화계에도 경제한파가 몰아닥치면서 외화내빈 (外華內貧) 의 거품이 가라앉고 있는 요즘에 더욱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

그동안 국내 오페라단들은 화려한 무대세트나 의상으로 음악적 공백을 메워 보려는 경향이 강했다.

제작비의 대부분을 대기업의 후원에 의존해야 했고, 그래서 더 화려한 그랜드오페라를 고집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물량위주로 흐르는 오페라가 스탠더드 레퍼토리로 흐르는데 대한 반작용으로 소극장 오페라운동이 80년대부터 줄기차게 계속돼왔다.

소극장 오페라는 관객과 친밀한 예술적 교감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대세트.출연진의 규모가 작아 뛰어난 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소극장오페라 운동을 통한 젊은 성악가의 발굴을 목표로 지난 94년 창단된 예울음악무대 (공동대표 박수길.김신자)가 지난해에 이어 무대에 올린 메노티의 '아말과 밤에 찾아온 손님' (8~11일 국립극장 소극장) 은 단순한 실험의 단계를 넘어 정착단계에 이른 소극장 오페라운동의 현주소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작품은 동방에서 온 세 임금이 큰별을 보고 아기예수께 예물을 들고 경배하러 가던 중 절름발이 소년 아말의 집에서 겪는 이야기다.

올해는 지난해와는 달리 제1부에서 예술가곡.성가곡.합창으로 꾸민 콘서트 형식의 '작은 음악회' 를 공연해 눈길을 끌었다.

10일 공연에서는 지난해 출연진이었던 메조소프라노 김신자 (어머니) , 테너 손상철 (카스파르) , 바리톤 장형규 (멜키오르) , 베이스 장봉찬 (발사자르) 이 출연해 노련한 연기를 보여주었으나 짧은 리허설 과정 때문인지 군데군데 앙상블이 덜 다듬어진 흔적이 보였다.

찌그러져 가는 움막 같은 무대세트로 찢어지게 가난한 주인공 가족의 경제적 환경을 잘 묘사했으며 무너질 것 같은 벽을 떠받치고 있는 나무기둥은 소년 아말의 목발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최대한 입체감을 살린 무대세트와 조명, 무대 공간을 십분 활용한 동선 (動線) , 겨울밤추위에 떠는 빈민층의 슬픈 이야기 속에서도 결코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코믹한 배려 등 연출가 이소영의 섬세하고도 넉넉한 배려가 느껴진 무대였다.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동방박사의 보석을 훔치는 장면에서 어머니가 부르는 처절한 아리아에서는 관객들은 모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소극장 무대에서 눈부신 활약을 해온 지휘자 김정수씨가 이끄는 현악앙상블의 열연 (熱演) 도 큰 몫을 해냈다. 예울음악무대의 '아말과 밤에 찾아온 손님' 은 한편의 동화같은 이야기를 오페라화한 점에서는 12일부터 1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소강당 무대에 오르는 '헨젤과 그레텔' (훔퍼딩크 작곡.서울시립오페라단) 과 일맥상통한 데가 많다.

어쨌든 '아말…' 과 '헨젤과 그레텔' 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 (28일부터 1월4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과 함께 송년 오페라무대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잡은 셈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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