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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킬러 다룬 영화 '자칼'…두뇌싸움에서 무기자랑으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베네수엘라출신의 전설적인 테러리스트 카를로스 자칼이 오늘 (12일) 마침내 프랑스법정에 선다고 한다.

70년대부터 94년 체포되기까지 각국의 테러조직들과 관련된 신출귀몰한 테러활동으로 이름을 떨친 그의 본명은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 자칼이란 이름은 영국의 유명한 스릴러작가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70년도 소설 '자칼의 날' 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사건과 허구를 조합하는 다큐멘터리식 스릴러를 개척한 포사이스는 60년대에 프랑스의 군부와 우익들이 잇따라 기도한 샤를르 드골 대통령 암살미수사건을 소재로 삼았고, 거기에 냉혹한 킬러 자칼이란 인물을 만들어 흥미와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자칼의 날' 은 소설도 성공했지만 73년 프레드 진네만이 영화화해 (국내 비디오출시제목은 '자칼의 음모' )가상의 인물 자칼은 더욱 유명세를 탔다.

13일 개봉하는 액션스릴러 '자칼' 은 바로 이 '자칼의 날' 을 리메이크한 영화. '롭 로이' 를 연출한 마이클 케이튼 존스 감독은 브루스 윌리스, 리처드 기어와 오랫만에 할리우드 대작에 모습을 드러내는 흑인배우 시드니 포이티에 등 스타파워를 내세워 90년대식 킬러의 세계를 담아내려 했지만 원작에 충실했던 프레드 진네만의 작품같은 긴장감과 인물창조에는 못미치고 있다.

요즘 할리우드영화의 새로운 추세를 대변하듯 첨단 무기들과 직접적인 폭력장면, 스케일큰 액션 등 이야기의 충실성 보다는 '유쾌하지 않은' 볼거리에 치중했다.

이는 60년대의 세계를 정치적인 긴장의 장으로 몰고갔던 진보와 보수의 대립양상이 약화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97년도의 '자칼' 에는 정치적인 긴장이란 커다란 배경이 배제됐다.

등장인물들은 명목상으로는 KGB, FBI, IRA, 바스크독립주의자 라는 명함을 지녔지만 이들을 움직이는 동기는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축소됐다.

73년의 자칼 에드워드 폭스는 감정과 표정에서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프로킬러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브루스 윌리스는 암살준비과정에서 무의미한 살인과 인질극을 벌이는 치사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암살의 무기가 저격용 소총에서 컴퓨터로 조종되는 대형 속사포로 바뀐 것 만큼이나 영화가 지닌 인간적인 긴장미가 기계적인 대형액션의 무의미함으로 대체됐다.

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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