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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 놓인 ‘아메리칸 드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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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언뜻 사소해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풍파가 이는 건 법안에 담긴 상징성 탓이다. 소수민족들은 “경제위기 이후의 반(反)이민 정서를 반영한 대표적 악법”이라고 흥분한다. 한 인권단체는 “조지아에 투자하려는 기아차에 ‘돈만 보내고 오지는 말라’는 얘기”라고 성토했다. 법안이 별명으로 ‘기아 고 홈’을 달게 된 배경이다. 외국인 견제는 이뿐 아니다. 요즘 미 전역에서 외국인을 채용하려 들면 세무조사가 들이닥친다고 한다. 심지어 지난해 접수 하루 만에 동났던 전문직 취업비자 신청마저 올해에는 62%나 줄어 비자가 남아돈다. 경제위기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온 외국인들을 절망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실종은 외국인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서 49%의 미국인이 “아메리칸 드림은 사라졌다”고 답했다. 힘들여 일한들 성공할 수 없다는 냉소주의가 온 미국을 뒤덮은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미 정치권은 ‘아메리칸 드림 회복회의’를 여느니 마느니 호들갑이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

어쩌다 이리됐나. 여러 해석이 있지만 “비뚤어진 아메리칸 드림 탓”이라는 분석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더 넓은 집, 더 좋은 차 같은 물질적 풍요가 아메리칸 드림의 완성이라는 믿음이 미국인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는 브루스 핸더슨이란 언론인의 주장이다. 실제로 평균 주택 크기는 1950년 91㎡에서 70년 139㎡로, 2006년엔 229㎡로 늘었다. 2.5배나 커진 셈이다. 평균 체중은 80년대 말 이후 한 해 0.45㎏씩 증가, 연령별로 9㎏이나 무거워졌다. 70년대 전체의 15%였던 비만인구는 이제 3분의 1을 넘었다. 저축도 안 한다. 82년 가처분 소득의 11%에 달했던 저축률은 이제 1%를 밑돈다. 저축할 줄 모르는 뚱뚱한 미국인들이 집 늘리기에 골몰한 탓에 경제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위기가 아메리칸 드림을 되살릴 것이라는 역설적인 전망도 있다. 호된 경제위기로 정신 차린 미국인들이 근검절약하게 될 거란 예언이다. 실제로 20·30년대 대공황을 통해 뼈저린 가난을 체험한 미국인들은 세월이 흘러도 이를 잊지 않았다. 44년 26.1%에 이른 사상 최고의 저축률도 대공황의 산물이었다.

동구권 몰락 이후 미국이 세계 유일의 강대국으로 떠오르면서 미국인들이 오만해졌다는 원성이 자자했다. 그런 미국인들이 이번 시련을 계기로 근검절약의 전통을 되찾아 또 한번 아메리칸 드림을 회복할지 지켜볼 일이다.

남정호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