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히는 열차문에 발 집어넣는 승객 보면 아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4면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은 출근 시간이면 몰려드는 승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커트맨 이찬형(26·오른쪽 깃발 든 사람)씨가 승객들의 안전승차를 돕고 있다. [박종근 기자]


“다음 열차 이용하세요.” “아주머니, 그쪽에 계시면 위험합니다.” “할아버지, 다음 열차 타시죠.”

커트맨은 ‘푸시맨’이 진화한 것이다. 1990년대의 푸시맨은 승객을 전동차 안으로 밀어넣는 것이 주 임무였다. 출퇴근길 일분일초가 아까운 승객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무리하게 밀어넣는 과정에서 안전 문제가 발생하는가 하면 열차 출발이 지연되기도 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6월 신도림·사당·교대역 등에 커트맨이 등장했다. 승객의 탑승을 안내하고 적절한 선에서 전동차를 타지 못하도록 자르는(커트) 것이 역할이다. 현재 승객 이용이 많은 서울시내 24개 역에 8~16명씩 배치돼 일한다. 역무원·공익요원뿐 아니라 행정인턴·노인봉사단 등이 커트맨으로 활약하고 있다. 근무시간은 오전 7시30분부터 9시까지. 나머지 시간에는 자신이 맡은 일을 한다.

승객들은 커트맨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승객의 안전을 확보하고 열차 지연 운행을 방지하려는 커트맨과 출근 시간에 쫓기는 승객 간에 실랑이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실랑이는 전동차 문이 닫히려는 순간 문에 손발을 넣는 것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주로 생긴다.

하루 32만명의 환승객이 몰리는 신도림역에서 커트맨으로 일하는 행정인턴 권현우(28)씨는 “제가 막아서 못 탄 승객이 ‘너 때문에 지각해 잘리면 책임질 거냐’ ‘왜 이렇게 막느냐’ 고 함부로 말을 하면 서운하다”고 말했다. 서울대입구역에 근무하는 행정인턴 황영상(26)씨는 “고객의 안전을 위해 커트하는데 막무가내로 승차하지 못했다고 화내면 할 말이 없다. 문이 닫히는데도 손이나 가방을 무리하게 밀어넣는 사람을 보면 아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무리하게 승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가벼운 찰과상에서부터 골절까지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한 달 전 까치산행 2호선 열차에서는 할머니가 닫히는 문에 지팡이를 넣어 지팡이가 낀 채 전동차가 몇m 가다 멈춰섰다. 지난주에는 가방이 문에 낀 채 열차가 달리는 바람에 가방 안의 물건을 모두 잃어버린 일도 있었다.

강성채 신도림역장은 “열차 문에 손과 발을 집어넣는 승객을 보면 안전불감증에 걸린 듯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출퇴근 시간대에는 열차가 더 배차되는 시간을 파악해 활용하고, 환승역의 경우 덜 혼잡한 이동 통로를 알아두면 ‘안전과 편리’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열차를 갈아탈 때는 가까운 곳은 환승객이 몰리는만큼 먼 곳의 객차에 탑승하는 것이 복잡한 지하철을 피하는 요령이라고 덧붙였다. 기관사 손석주(41)씨는 “무리하게 승차하는 것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지연 운행되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바쁘더라도 커트맨의 안내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커트맨은 힘들다. 서울대입구역 커트맨 행정인턴 박병섭(27)씨는 “하이힐 신은 여성 승객이 제 발을 밟고 지나가는 경우가 하루에도 몇 번씩 있다. 지하철 승강장 공기가 좋지 않아 일이 끝나면 목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보람도 있다. 권현우씨는 이렇게 말했다. “복잡한 출근시간에 외국인이 와서 길을 물으면 진땀이 나죠. 질서도 유지해야 되고, 승객들 줄도 세워야 하고 움직일 공간도 없는데 길도 알려줘야 하니까요. 그렇게 힘들어도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 정말 보람을 느껴요. ”

행정인턴인 황영상씨는 “커트맨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푸시맨이 될 때가 많다. 사람들이 다들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구나 싶어 가슴이 찡하기도 하다. 나 자신이 성장하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행정인턴 박병섭씨는 “복잡한 역에는 성추행범이 많은데 저 때문에 성추행범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다행”이라며 웃었다.

취재·작성=김성진·김남혁 행정인턴, 사진=박종근 기자

취재해 보니
“서로 배려하며 즐기는 지하철문화 만들어야”

일일 기자가 되어 동료 커트맨을 취재한 행정인턴 김성진(28·右)·김남혁(25)씨.

지금 지하철을 타고 있거나 지하철역에 있다면 주위를 한번 돌아보자.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인과 손을 꼭 잡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학생들의 시험 답안지를 채점하는 교수, 한가로이 뜨개질하는 여성도 보인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전동차 안은 다양한 삶의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역사(驛舍)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얼마 전 신도림역에서는 메트로팝스 음악공연이 열렸다. 경복궁역에는 메트로미술관이 미술 애호가들을 기다린다. 다른 역에서도 수시로 문화예술공연이 열린다. 운송수단에 한정되던 지하철이 문화코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지하철이 쾌적하고 편리한 교통수단, 문화시설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승객 모두가 질서와 공중도덕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