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3분 동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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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최정례(1955~ ) '3분 동안' 부분

3분 동안 못할 일이 뭐야
기습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지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한 나라를 이룰 수도 있지

그런데
이봐
먼지 낀 베란다에 널린
양말들, 바지와 잠바들
접힌 채 말라가는
수치와 망각들
뭐하는 거야

저것 봐
날아가는 돌
겨드랑이에서
재빨리 펼쳐드는 날개를(후략)



시간은 러시아 인형과도 같다. 하나의 시간을 열고 들어가면 여러 겹의 시간이 그 속에 들어 있다. 그 시간의 틈새에서 일어나는 비상과 추락으로 어떤 '3분'은 아주 길다. 돌연 일상의 유리창을 깨뜨리며 날아온 돌멩이는 이렇게 말한다. 며칠째 널려 있는 양말들이여, 이 진부하고 눅눅한 일상을 뚫고 날아올라라. 네 속의 숨은 날개를 펼쳐 들어라, 3분이 지나기 전에.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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