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도 놀란 은행 폐쇄설…해당은행 루머에 큰 피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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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금 온 세계는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

태국에서 시작된 아시아 금융.통화위기가 한국에서 잡혀야지 다른 나라에 또 옮겨붙었다간 자칫 30년대와 비슷한 세계질서의 혼돈이 촉발될까해서다.

그래서 국제통화기금 (IMF) 이 서둘러 사상최대의 긴급지원에 나섰고 12개국이나 되는 많은 나라들이 '제2의 마지노선' 을 쳤다.

세계가 주시하는 것은 단순히 한국경제의 신용회복만이 아니다.

세계는 한국사회 전체의 위기관리 능력을 기대하고 있다.

국제금융자본들에 한국의 외환보유고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세련된 자본주의를 꾸려갈 수준이 된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어야만 한다.

지난 주말 있었던 'IMF 합의문 축소발표 시비' 는 '가장 부실한 2개 은행' 의 운명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언론들의 인터넷에 먼저 오르기 시작한 이 일을 두고 뉴욕 금융시장의 '빠끔이' 들은 한밤중임에도 사실을 확인하느라 여기 저기 전화를 걸어댔다.

IMF 관계자가 전하는 '은행 파산 조항' 의 진상은 이렇다.

"점포수 4백개가 넘는 한국의 시중은행을, 은행수는 2백개가 넘지만 은행당 점포수는 몇 안되는 인도네시아의 은행처럼 당장 문을 닫게 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한국정부는 종금사에 대해서는 신속한 조치를 취하겠지만 은행문을 닫게 하지는 못하겠다는 뜻이 확실했다.

결국 문제가 심한 은행들에 대해 주식평가손등 장부상의 손실을 다 현실화시키고 정해진 시한 안에 정부가 나서서라도 증자를 해 자기자본 비율을 기준에 맞추겠다는 한국정부의 의지가 표명됐다.

이에 따라 IMF는 한국정부의 의지가 이행되게 하기 위한 보증으로, 계획대로 안될 때는 한국의 감독당국이 영업을 정지시킨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런 속사정을 놓고 5일 (현지시간) 워싱턴에서 IMF 부총재와 담당국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은행 영업정지 여부에 관한 곤란한 질문이 나오자 다음과 같이 피해갔다.

"모든 시중은행들도 체질강화.신용회복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합의가 있었다."

(휴버트 나이스 아시아.태평양 담당국장) "종금사 외의 모든 금융기관들도 자기자본 기준등을 맞추기 위한 시간계획이 잡혀 있다."

(스탠리 피셔 부총재) 똑같은 일을 놓고 "문닫지 않도록 무엇무엇을 하기로 했다" 고 전후사정을 일러주는 것과 "무엇무엇을 하지 않으면 문닫기로 했지 않느냐" 고 다그치는 것에는 천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언론의 '축소발표 시비' 를 통해 '2개 시중은행의 파산 불가피' 운운하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제 자금시장이 또한번 어떻게 거칠게 반응할지 모를 상황이다.

서울의 루머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뉴욕 금융시장에선 이들 2개 은행은 이제 대출선 회복의 실낱같은 희망마저 포기해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오늘부터 영업을 다시 시작해야할 2개 시중은행의 창구에서 만의 하나 무슨 일이라도 난다면 엄청난 뒷감당을 해야만 한다.

물론 정부가 "그런 일은 논의되지 않았다" 고 부인하다가 사안이 터지자 "체질강화 합의가 있었다" 고 둘러대는 것 또한 문제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허둥대는 정부가 미덥지 못하다해서 다들 콩 튀듯하면 우리 모두가 손해다.

세련된 자본주의를 꾸릴 수 있는 능력은 위기상황에서 모두가 얼마나 신중하고, 정확을 기하느냐에서 가늠된다.

김수길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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