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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쓰기 주부모임 '편지가족' 서신 모음 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여기 편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편지를 통해 세상 사람들과 연애를 한다.

전자시대에 들어 한데로 밀려난 편지가 이들에겐 펜티엄급 컴퓨터 못지 않은 '사랑의 이기 (利器)' 가 된다.

편지쓰기를 즐겨하는 주부들의 모임인 '편지가족' .지난 92년 이맘때 40여명의 회원으로 출발해 현재 전국 7개 지부 5백여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회원 모두 우정사업진흥회가 주최하는 '전국 주부편지쓰기대회' 의 입상자들이다.

이들은 끼리끼리 편지로 서로가 사는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올봄 나온 '편지가 있는 풍경' 이란 책은 이들의 글모음이다.

내년 1월중엔 두번째 책을 낼 계획이다.

이 '편지가족' 의 사연은 언제 들어도 따스한 체온이 느껴진다.

"거짓말을 들러대고 오락실 출입이 잦던 철부지 아들의 버릇을 편지로 고쳤다" 는 박은정 (朴銀正.39) 씨. 박씨는 일주일마다 아들에게 편지 한통씩을 써 몰래 가방에 넣어줬는데, 이런 정성이 자칫 비뚤어질 수 있었던 아들을 감동시킨 것. "현아, 너는 공부는 싫어해도 피아노 잘치고 운동 잘 하잖니. 엄마가 알어. 그런데 엄마가 부탁하나 할까. 텔레비젼 보는 시간 좀 줄여주고 아침에 깨우기 전에 일어나면 어떨까." 박씨는 "아이들이 말로 꾸짖는 것보다 편지를 건네줄 때 적극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했다" 며 편지 예찬론을 폈다.

때로 한장의 편지는 남남을 친동기간처럼 맺어주기도 한다.

미지의 사람과 정을 나누는 펜팔이 바로 그것이다.

올해 마흔네살의 백연옥 (白然玉.충남 서산군) 씨. 백씨는 지난 10월 편지쓰기모임을 통해 알게된 서울 친구의 갑작스런 방문을 받고, 밤새 이야기 꽃을 피운 적이 있다.

한달이면 십여통씩 편지를 주고받아 서로 잘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대면을 하니 오랜만에 동생을 만난 것처럼 왈칵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것. 백씨는 "애들 과외문제등 학부모의 고민들을 함께 얘기하며 서로 조언도 해준 즐거운 시간이었다" 며 그날을 추억했다.

읽는 맛을 잊지못해 오래 간직하는 게 또 편지다.

새삼 다시 읽다보면 유치해 헛웃음이 나오는게 보통이지만 박경희 (朴敬姬.37) 씨는 결혼전 연애편지를 지금껏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명심보감' 이나 '채근담' 등에서 뽑아온 그럴싸한 편지속 고사성어들을 들춰 읽다보면 옛 애인생각도 나지만, 오히려 아이들을 키우는데 좋은 경구가 되곤 한다는 것이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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