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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수 없었던 외환통계…정부 축소·은폐의속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외환통계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금융을 받기 전까지 정부가 외환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또 외국 투자가는 물론 IMF도 우리의 외환통계에 대해 상당한 불신을 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외환통계를 쟁점별로 짚어본다.

<외환보유고>

한국은행은 아직 11월말 규모를 공식 발표하지 않고 있다.

10월말엔 외환보유고가 3백5억1천만달러로 9월말보다 조금 늘었다고 발표했다.

환율상승을 막으려고 연일 달러를 풀었는데도 외환보유고가 줄어들지 않은 것이다.

외환통계에 대한 불신이 이때부터 번져나갔다.

시장개입에도 불구하고 외환보유액이 줄지 않은 것은 한은이 '외화예탁금' 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한은은 시장개입과 별도로 국내은행 해외지점의 부도를 막기 위해 해외에서 외환보유고를 사용했다.

그래도 한은의 외환보유고는 통계상 줄지 않았다.

외국은행에서 국내은행 지점으로 외환보유고의 예치계정을 바꿨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내은행 해외지점의 외채 결제용으로 다 사용됐기 때문에 외환보유고는 사실상 그만큼 없어진 셈이다.

대신 한은의 부실채권만 늘어났다.

한은은 11월들어 거의 매일 시중은행의 해외결제를 지원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외환보유고는 바닥난 상태다.

<외채규모>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으로 나누어 집계된다.

공공부문은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들여온 차관을 재경원이 일괄 집계해 한은에 넘겨준다.

민간부문의 외채는 한은이 각 외국환은행을 통해 파악한다.

기업이 들여오는 돈은 모두 은행계좌를 통해 들어오므로 은행만 체크하면 된다.

한은은 이를 위해 각 은행의 외화대차대조표를 매달 한번씩 받는다.

또 열흘에 한번씩 전화로 숫자를 중간 집계한다.

외채통계에는 큰 구멍이 있다.

국제화바람이 불면서 기업이 해외에 진출해 현지에서 외화를 빌려쓰는 경우가 늘어났는데도 이것이 외채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외법인의 경우 국내기업과는 달리 현지에서 독립채산으로 운영되므로 통계상으로는 '우리의 외채' 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해외법인이 돈을 빌릴 때는 대개 국내 모기업의 지급보증을 받아가는 것이 문제다.

해외법인이 쓰러지면 국내 모기업이 빚 부담을 고스란히 지게되는데도 외채에 잡히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번 협상에서 IMF의 구제금융규모가 비교적 커진 것도 기업외채를 감안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보고채널>

통계가 나오면 한은내에서는 국제부장→국제담당임원→부총재→총재의 라인으로 보고된다.

이 통계는 동시에 재정경제원으로 넘어가 외화자금과→금융총괄심의관→금융정책실장→차관→부총리의 순으로 올라간다.

또 한은과 재경원이 청와대의 경제수석비서실로 이 통계를 보고하는 것도 관례다.

특히 청와대에 대해서는 환율문제가 심각해진 11월초부터 재경원이 일일보고를 통해 급박한 상황을 상세히 전했다고 한다.

또 부총리.한은총재.청와대 경제수석이 1주일에 두번씩 만나 외환사정을 협의했다.

정책당국은 외환사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훤히 알고 있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이한 소리만 했던 걸 보면 실제 가용외환, 또는 방대한 기업 현지외채의 존재 등 실제 지급능력과 직결되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알리지 않았거나 또는 모르고 있었거나, 아니면 정책실기 (失機) 등에 따른 책임을 면키 위해 허위로 보고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안나올 수 없는 것이다.

<조작 가능성>

의도적으로 숫자를 날조하지는 않는다.

통계를 내는 방법은 세계은행이 정한 기준에 따라 자동적으로 프로그램화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외환보유고의 경우 구성항목을 밝히지 않아 오해를 사고 있다.

예컨대 국내은행 해외지점의 부도를 막기 위해 한은이 지원한 외환보유고의 경우가 그렇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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